[김광기의 마켓워치] 세계는 다시 ‘돈풀기 모드’ … 한국도 금리 인하 저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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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리스 2차 총선이 끝났고 보수 성향의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유로존의 위기가 끝났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28일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등에서 그리스를 돕는 조치가 나오겠지만, 몇 달 시간을 벌어주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위기의 주기적인 반복이요, 장기화 시나리오다.

 이제 남유럽발 위기가 EU의 경계를 넘어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전역의 실물경제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위기의 전염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경기회복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던 미국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상한선을 2.9%에서 2.4%로 낮췄다. 중국 등 신흥국들도 성장 목표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다음 주 내놓을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7%에서 3%대 초반으로 낮출 예정이다.

 지난주 만난 주요 20개국(G20) 정상은 지금 세계가 긴축보다는 성장 쪽에 무게를 둬야 할 때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각국이 재정 확대로까지 가기는 힘겨운 상황이다. 독일 같은 채권국들은 채무국에 대해 재정건전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 세력 간 이해 상충 때문에 재정확대 합의가 어렵다. 중국은 재정을 최후의 보루로 아껴 두려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주요국들이 당장 꺼내 드는 카드가 통화완화책이다. 시중에 돈을 더 풀고 금리도 다시 내리는 처방이다. 유동성의 수위를 잔뜩 높여 실물경제 쪽으로 돈이 스며들도록 하자는 의도다. 큰 걸림돌 하나가 제거됐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경기 하강 흐름이 원자재 등의 수요를 위축시키면서 물가 걱정을 덜어준 것이다.

 신흥국가들이 기준금리 인하에 앞장서고 있다. 인도와 브라질에 이어 중국이 금리를 내렸다. EU도 현재 1%인 기준금리를 조만간 내릴 태세다. 이미 기준금리가 ‘제로’인 미국과 일본은 국채 매입을 통해 돈을 더 푸는 쪽으로 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주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장단기 국채 교환 프로그램)를 연장했다. 화끈한 3차 양적완화(QE)도 이제 시간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의 선택은 어떨까. 국내 상황은 좀 특수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가 부담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도 가계 부채가 계속 늘어난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한국은행도 결국 글로벌 금리인하 대열에 동참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가계의 소비 여력이 너무 위축되고 있는 까닭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달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낮추어도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이 2조5000억원 줄어든다. 그만큼 내수를 진작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때마침 가계부채 증가세가 한풀 꺾일 조짐도 보인다. 1분기 중 가계부채는 5000억원 감소했다. 물가가 안정된 가운데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면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시점은 빨라질 것이다. 이를 감지했기 때문일까. 요즘 부자들은 주식에서 돈을 빼서 채권으로 옮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외국인들도 한국 채권 매입에 열심이다. 금리인하는 주식에도 호재일 수 있다. 그러나 경기 하강에 따른 기업실적 둔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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