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노동자 임금 확 올려서 내수 키우고 ‘세계 시장’ 역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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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학(UCM)은 스페인의 자존심이다. 이베리아 반도 최고·최대 대학으로 꼽힌다. 노벨상 수상자 7명을 배출했다. 알폰소 팔라치오(사진) 교수는 콤플루텐세 경제경영학부 부학장이다. 20일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소모스구아스 캠퍼스로 그를 찾아갔다. 그는 대뜸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위기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독일 경제 전문가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방만하고 게을러 위기가 발생했다고 한다.

 “너무나 많이 들은 지적이다. 친한 독일 학자가 유력 일간지에 그런 식으로 스페인 사람 을 비판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반박할 통계자료가 많지만 생략하겠다. 그 정도 했으면 된 것 아닌가.”

 -뭐가 말인가.

 “2009년 말 그리스 위기가 표면화한 이후 지금까지 그런 식의 비판이 아닌 비난이 쏟아졌다. 이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지칠 때가 됐다.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희박한 그런 감정적인 질타가 당장 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 정도로 다급한가.

 “올여름이 아주 중요한 고비라고 생각한다. 특별한 대책이 없으면 스페인 앞날이 비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럴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스페인처럼 규모가 큰 나라를 구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페인 경기는 침체 상태다. 세금이 제대로 걷힐 리가 없다. 이런 와중에 국채의 시장금리가 치솟는 사태는 치명적이다.”

 -어떻게 해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을까.

 “유럽중앙은행(ECB)이 나서야 한다. 시장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국채를 사들여 이들 나라의 이자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는 경제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해야 할 응급처치다.”

 네덜란드 금융그룹인 ING는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시장금리)이 7.5%를 넘어서면 ECB가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수 있다”고 최근 전망했다. 이날 스페인 10년물 시장금리는 위기 단계인 연 7%대에서 위험 수준인 6.75%로 내렸다.

 -급한 불을 끄면 유로존 위기가 자연 치유될까.

 “유로존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체 조절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정치·재정 통합이 없는 최초 통화동맹이어서 그렇다. 회원국가들이 인위적으로 노력해야 겨우 균형이 이뤄진다.”

 -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독일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시 팔라치오 교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독일이 구제금융 펀드에 2100억 유로(약 309조원) 정도를 부담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런데도 독일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독일에 더 많은 돈을 요구하려는 게 아니다. 스페인 사람들도 자존심은 있다”고 말했다.

 - 독일이 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일까.

 “독일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이 20년 가까이 정체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으로 스페인·그리스 등의 임금을 낮춘다고 이들 나라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경제 성과에 걸맞게 독일 임금이 올라야 한다.”

 -양쪽 임금 격차가 더 벌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바로 그게 유로존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의 차이를 좁히는 지름길이다. 특히 독일은 임금 상승을 유도해 내수를 키워야 한다. 독일이 2차대전 이후 미국처럼 세계의 시장으로 구실해야 한다.”

 -독일도 요즘 긴축하고 있는데 가능할까.

 “ 메르켈 총리가 잘못하고 있는 대목이다. 스페인이나 그리스가 어느 정도는 긴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 국가인 독일마저 긴축하면 경기침체 악순환만 일어난다. 실제 그렇지 않는가. 내가 보기엔 그리스나 스페인보다 독일이 먼저 긴축을 풀어야 한다.”

 -불균형 해소엔 적어도 3~4년이 걸릴 것이다. 단기적으로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유로존 통합채권(유로본드)을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 돈을 구멍난 재정을 메우는 데 쓰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주로 써야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선뜻 그렇게 할까.

 “성장 촉진과 불균형 해소 노력이 없으면 유로존은 2~3년 안에 붕괴한다. 그게 경제 원리다. 유로존은 독일이 통일 이후 장기침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수출시장이 커져 통독으로 넘치는 노동력을 소화했다. 이런 요긴한 시스템을 독일이 잃을 수 있다.”

알폰소 팔라치오 교수 스페인 경제학계에서 2007년 이후 “가장 왕성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교수”로 꼽힌다. 마드리드콤플루텐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리즈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모교로 돌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시경제와 금융통화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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