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이야기' 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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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읽은 책 중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삶이 가장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소설가 박완서의 자전소설 『그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웅진출판·1996) 였다.

이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개성 근처 박적골의 풍광과 이에 얽힌 성장과정 묘사는 못말리게 아름다워서 머리 깊숙이 각인돼 있다. 우리 근현대 문학을 통틀어 흔치않은 명장면임이 분명하다.

이영문의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도 이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

이른바 문학적 향기의 미문(美文) 은 아니지만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담고 옮길 줄 아는 안정된 문장도 미덥고, 무엇보다 청개구리 ·거미에서 무당벌레 ·미생물에 이르는 “훌륭한 농사꾼”들에 대한 하늘 같은 믿음 속에 천하태평으로 자연에 기대어 논일 ·밭일 하는 풍모는 눈이 번쩍 뜨일 지경이다.

더욱이 그것이 한가한 회고담이 아니고, 우리 시대 자연―인간 관계의 새 패러다임일 수 있음을 깨치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실제로 이영문의 태평농법은 상당수의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을 규합해 진정한 생태농업을 실험 중이기도 하다.

이 책에 바쳐지는 찬사는 과장이 아니다. 마침 나온 신간 『불안한 현대사회』(이학사) 의 경우 현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 찰스 테일러의 성찰(최고의 윤리학자 리처드 로티가 “이 책은 일류다”고 찬사를 보냈다) 을 담고 있다.

한데 그는 이 책에서 효율성 제일주의의 현대사회에서 막상 ‘삶의 의미있는 지평’이 증발했다는 것, 그리고 인간과 우주 전체의 ‘존재의 거대한 연결고리’가 사라진 데서 현대인의 불안이 시작된다고 심도있게 지적하고 있다.

‘자연 지배’를 목표로 했던 모더니티, 도회지 삶의 흉한 몰골이 그렇다는 얘기다. 이영문의 신간은 이런 의미있는 진단에 대한 훌륭한 대안으로 읽힌다. 좋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이 책과 관련해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부박한 시대, 자기 생각이 없이 짜깁기한 과장된 언어의 홍수에 지쳤을 것이 분명한 당신을 위무해줄 신뢰할 만한 목소리”, 그것이 이영문의 신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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