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억 챙긴 김택진, 어제 직원들에 전격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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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엔씨소프트가 19일 조직개편 계획을 내놨다. ‘작고 강한 조직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결국 구조조정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엔씨소프트의 전사효율화 태스크포스(TF)는 이날 오전 사내 공지문을 통해 “세계적인 게임업체와 국내 대형 포털도 비용절감, 조직개편 등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며 “엔씨소프트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효율성을 과감하게 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별 성과를 내지 못했던 가벼운 캐주얼 게임이나 스마트폰용 모바일 게임 관련 조직이 축소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이 회사 전 직원(2600여 명)의 10(260명)~30%(720명)가량이 엔씨소프트를 떠나게 될 것으로 본다. 라이벌 회사의 전격적인 주식 매입과 바로 이어진 조직개편. 두 가지를 놓고 김택진(45·사진) 대표의 의중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넥슨 김정주(44) 창업자와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정보기술(IT) 업계 최고경영자(CEO)다. 리니지 시리즈의 성공과 ‘천재소녀’ 윤송이(37) 엔씨소프트 부사장과의 결혼으로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이달 8일 자신이 가진 엔씨소프트 지분 가운데 절반 이상인 14.7%를 경쟁업체인 넥슨에 8045억원에 넘겼다.

 궁금점의 핵심은 매각 대금으로 받은 8045억원의 용처다. 익명을 요구한 넥슨 관계자는 이날 “이미 주식 대금은 전액 지불했다”고 말했다. 설명대로라면 김 대표는 8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쥐고 있다. 하지만 이 돈을 어디에 쓸지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기업설명회(NDR)에서 넥슨은 “현재로서는 김택진 대표와 김정주 회장 외에 내용을 아는 사람은 전무하다”며 “때가 되면 딜(Deal)의 내용이 밝혀질 것”이라고 설명한 게 전부다. 업계에서는 세계 게임업계 1위인 ‘비방디-액티비전블리자드’ 모델을 구상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세계 최대의 게임업체인 비방디는 운영을 맡고, 개발은 자회사인 블리자드가 전담하는 형태다.

 반대로 ‘그가 게임에 대해 갖고 있던 열정이 식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 대표는 2008년 아이온 출시 당시 홍보 동영상의 엔딩 크레디트까지 일일이 챙기면서 ‘김 대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공개를 하루 앞둔 신작 게임 ‘블레이드앤쏘울’에 대한 마케팅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리니지 같은 대작 온라인 게임(MMORPG) 외에 캐주얼 게임으로 영역을 넓히려 했는데, 이게 또 잘 안 돼서 (김 대표가 회사를) 정리하려 한다는 얘기가 이전부터 파다했다”고 말했다.

 매출부진도 이 같은 지적에 힘을 실어준다. 엔씨소프트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13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6%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1412억원으로 9%가량 줄어들었다. 매출 부진의 원인은 2008년 아이온을 출시한 이래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한 탓이다. 최근 디아블로3로 국내 게임 시장을 휩쓸고 있는 미국 블리자드 역시 디아블로3 출시 직전 600명의 직원을 감원했다. 전 세계 게임업계 전체가 성장의 한계에 이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는 형국이다. 김 대표가 확보한 자금의 분명한 용처를 밝히지 않다 보니, 갖가지 추측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시장 진출설이다. 김 대표가 부동산 투자회사를 세우고 여기에 자금을 투자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김 대표의 대변인 격인 엔씨소프트의 이재성 상무는 “부동산 투자나 정계 진출설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선택과 집중을 위한 조직개편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력이 회사를 떠날 수 있지만, 항간에서 얘기하는 대규모 구조조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MMORPG 다중접속온라인롤플레잉게임(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줄임말로 보통 ‘대작 온라인게임’으로 불린다. 게임 속 등장인물이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형식의 게임인 롤플레잉게임(RPG)을 온라인으로 연결된 다수의 사용자가 동시에 즐기는 형식이다. 승부를 가리거나 목표를 달성하면 종료되던 기존 게임과 달리 특정 사용자의 참여 유무와 상관없이 게임은 계속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화를 나누거나 아이템 거래 등을 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MMORPG에는 리니지, 미르의 전설 2, 뮤, 거상, 바람의 나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국산 MMORPG는 외국산인 블리자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밀려 맥을 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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