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기적인 기술이 수익 보장하는 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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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는 (특정 시점의 인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투표기계와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울과 같다.” 지난해 말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플로리다州의 재개표 공방으로 ‘투표기계’가 ‘르윈스키’ 이래 심야 토크쇼의 최고 인기소재로 떠오르기 훨씬 전 전설적인 투자가 벤저민 그레이엄이 한 말이다. 지난해 투자자들은 별로 웃을 기회가 없었지만 투표기계의 비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레이엄이 말하려는 것은 투자자들은 흔히 새로운 산업에 쉽게 유혹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주식매수를 통해 새로운 산업체에 표를 던진다. 회사의 실제 사업 전망이 대량시장에서의 인기와 무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망각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충분한 검토나 분석을 거치지 않는다.

주식시장은 한마디로 특정회사의 진정한 가치를 단기적으로 말해줄 신뢰할 만한 ‘기계’가 아니다. 물론 매수 당시 인기가 있는 회사에 대한 실마리는 늘 제공해 주지만 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시장은 회사의 ‘무게’, 즉 기업이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수익에 의해서만 회사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는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할 수 없다. 지난해 4월까지 많은 주주들은 新경제로 분류될 수 있는 모든 기업에 넋을 잃었다. 그러나 연말이 되자 그들 나스닥 상장기업 다수는 가치가 형편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처럼 도취돼 있던 기분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지금도 창조되고 있으며, 많은 투자자들이 (특히 주식시장에 새로 뛰어든 사람들이) 우리의 기존 생활양식을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하는 기술적 혁신을 떼돈 버는 길로 여길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술혁신과 일확천금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레이엄 밑에서 투자를 배운 워런 버핏은 오래전부터 지나치게 달아오른 투자자들에게 기술혁신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장기적 승리를 거둘 특정기업을 선택하는 진정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에서는 1895년 자동차 특허가 출원된 이래 2천개 이상의 자동차 업체가 명멸했고, 자동차 업계는 사회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주요 자동차 회사는 3개뿐이다. 크라이슬러社가 다임러社에 인수된 점을 고려하면 2개 반이라고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라디오·텔레비전·항공산업에서도 그와 똑같은 역사가 되풀이됐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이 모든 기술은 수백개의 신생기업을 탄생시켰고, 수백만명의 열정적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살아남은 회사는 극소수일 뿐 아니라 최후의 승자들조차 투자자들에게 미미한 수익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워런 버핏은 1999년 인터뷰에서 “92년 이후 상황이 나아졌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모든 항공사들이 항공산업이 생긴 이래 번 돈은 제로, 완전 제로였다”고 말했다. 80년 이상 대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온 혁명적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돌려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아무리 약간의 사회적 건망증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우리 모두는 역사가 스스로 되풀이하는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단시간 안에, 그것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가장 극적인 사실은 투자자의 수익감소가 ''인터넷주''(기분이 좀 불편하신 분은 ‘웃기는 株’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나스닥 지수는 지난 한햇동안 39%나 폭락했고, 현금에 쪼들려 정리해고를 발표하는 인터넷 기업의 수가 연일 늘던 지난 연말 무렵에는 시장의 ‘저울기능’이 ‘투표기계’의 기능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시장의 그같은 기능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 태동하는 각종 기술이 흥미진진한 투자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기술들은 분명 투자기회를 제공한다. 단지 성공적 투자자가 되는 데는 인기투표에서 최후의 심판이 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는 곳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그들이 치고 나오기 전에 먼저 몇가지 진정한 숙제를 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 기사들에서 온라인 판매, 이동통신 서비스 제공업체, 바이오기술과 소재산업 등 新경제의 3대 분야를 간략히 들여다 볼 것이다. 그 세가지 부문은 각각 인기산업들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면 된다.

우선 1년 전만 해도 미래의 물결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온라인 판매는 대체로 투자자들이 날린 현금의 무덤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e토이즈社가 등장해 이제는 새벽 2시에도 온라인으로 생일선물을 살 수 있게 됐지만 사실 그런 업체가 없다고 해서 살 물건이 부족해 고통을 겪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이동전화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확고히 뿌리내렸고 갈수록 더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동전화 서비스 제공회사들은 인간의 의사소통을 향상시키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물건을 24시간 아무때나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비해 의미도 더 있고 효용성도 더 크다.

한편 바이오 기술은 미래의 시장이다. 그것은 생명 자체를 연장시키는 일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세가지 산업 중 가장 높은 잠재적 가치를 창출한다. 장수(長壽) 비결이 있다는데 돈을 아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공하는 제약회사는 늘 든든한 투자대상이었다. 물론 이제 막 태동한 산업에서 궁극적 승자를 찾아내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특정 시점에서는 주식시장이 기술적 혁신을 선보인 회사를 그 기술의 참신성(“와! 세상만물을 바꿔놓을 기술이구나. 이걸 사야겠는 걸.”)에 따라 평가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떤 주식도 기업의 바탕이 되는 사업을 존속시킬 수 있을 경우에만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준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들은 업계 전망에 대해 더 심도있는 조사의 출발점인 동시에 주식의 장기 보유 가치가 있는 특정 회사를 선택하는 데 따르는 위험과 보상을 살펴보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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