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목록 세밀하게 분류 민원과 헷갈리지 않도록 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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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03면

최정동 기자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박균성(행정법) 교수는 한국 공법학회 회장 출신의 ‘민원 및 부패 전문가’다. 민원을 담당하는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위원과 공직사회 부패 방지를 책임지는 감사원 정책자문위원을 지냈다.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최한 부정청탁방지법안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그는 15일 “부패를 막기 위해 강력한 법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중요하지만 우리 문화와 행정 능력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법예고 앞둔 ‘우리는 남이다’ 법안

-새 법안에 문제는 없나.
“부패 원인인 청탁을 정확하게 지목해 청탁을 뿌리 뽑겠다는 접근은 당연히 좋다. 그래서 법안 취지와 입법화엔 공감한다. 하지만 법안 조문을 보면 예방법이라기보다 처벌법적 성격이 강하다. 언뜻 보면 강하게 처벌하는 게 청탁 차단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형사 처벌을 하려면 엄격한 입증이 요구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정한 청탁은 은밀하게 오고가 적발과 단속이 상당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형사 처벌만 강화하면 ‘어쩌다 재수가 없어서 나만 걸렸구나’란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집행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면 법의 권위가 훼손된다.”

-법안이 현실성이 없다는 뜻인가.
“예컨대 법안엔 공직자가 부정한 청탁을 신고하고, 신고 의무를 위반할 경우 징계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소위 ‘정(情)’이란 친밀한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에서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나타날 것이다. 쉽게 말해 청탁할 때 효과가 큰 친밀한 관계에서의 청탁은 막상 신고가 되지 않고 덜 친밀한 쪽에서의 청탁은 신고를 하는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부정한 청탁과 정당한 민원의 경계를 뭐라고 보나.
“법안에선 부정한 청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경우가 부정한 청탁에 해당되는지도 더 세밀하게 분류해야 한다. 예컨대 업무 처리의 방향을 유도하는 청탁, 특정인이나 업체에 이익을 제공하도록 암시하는 청탁, 압력을 가하는 청탁 등의 형태로 구체적으로 법안에 열거해야 한다. 또 실제 처벌은 이런 조항에 의해 확실하게 확인될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 처벌한다면 사안에 따라 과태료나 징계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일시에 형사 처벌의 범위를 확대하면 단속의 힘이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또 경계의 모호성을 놓고 처벌받는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도 있다. 동시에 부정 청탁의 유형을 선명하게 보여 줘야 청탁방지법이 정당한 민원의 처리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법안은 8조에서 부정 청탁의 유형이 아닌 적법한 청탁의 유형을 명시했다.)

-법안의 입법화가 가능하다고 보나.
“먼저 부처 간 협의가 잘 진행돼야 한다. 부정한 청탁의 처벌과 공직윤리의 강화 문제는 법무부·감사원·행정안전부 등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기관들과 사전에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는 게 필수적이다. 부처 간 권한 문제가 물밑에 깔려 있다. 부처별로 관련법의 제·개정 문제가 얽혀 있다 보니 속으론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건 국회의원 등의 권력 집단이나 공무원 사회가 대놓고 반대하진 못하겠지만 은밀하게 저항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 이익이 상당히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론 법안 취지에 찬성하면서 뒤에선 통과되기를 바라지 않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법안이 현실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부패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침해하는지 피부에 와 닿게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지금 거창하게 국가 발전의 단계를 얘기할 게 아니다. 사실 부정한 청탁과 같은 부패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평범한 서민들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부패라고 하면 ‘정치인들이나 하는 나쁜 짓’이라고 막연하게 여길 뿐 나의 생활과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부터 바꾸도록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또 논란의 소지를 막도록 법 조문을 보다 설득력 있게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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