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채 환매 제한' 배상 판결 파장

중앙일보

입력

1999년 8월 13일 단행된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우채 환매제한조치에 대해 법원이 14일 '법적 효력이 없다' 고 판결함에 따라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법원 판결이 법조문을 잘못 해석한 것이어서 이를 바로잡으면 큰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위는 이번 판결이 ▶법원이 증권투자신탁업법상의 환매제한 관련조항을 잘못 풀이한 것이며▶환매제한 조치 시행 전인 99년 8월 4일 환매신청을 한 경우에 국한된 것이라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며 판결의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그러나 서울지법은 98년 9월 17일 이후에 대우채권이 편입된 수익증권을 환매제한하는 것은 금감위의 '월권' 이라는 해석이다.

금감위가 환매제한을 할 수 있는 근거법인 증권투자신탁업법이 98년 9월 16일 개정되면서 환매제한 근거조항이 삭제됐기 때문이라고 법원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소송 당사자인 대우증권이 항소를 포기하거나 항소를 하더라도 법원의 이런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98년 9월 17일 이후에 대우채권이 편입된 수익증권을 사들인 투자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잇따를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환매가 제한됐던 대우채권 18조6천억원은 대부분 98년 하반기에 집중 발행됐기 때문에 소송금액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 누구 말이 맞나〓금감위의 논리라면 99년 8월 12일 이전에 환매를 신청했고 그 사실을 문서로 남긴 투자자는 이번 판결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99년 8월 13일 이후에 환매신청을 했거나 환매신청을 문서로 남기지 않은 사람은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지법의 해석은 다르다.

증권투자신탁업법 상 금감위가 환매제한권을 가진 것은 법이 개정되기 전인 98년 9월 16일 이전이므로 수익증권 환매제한도 이날 이전에 판매한 것에 국한돼야 하며, 따라서 98년 9월 17일 이후에 판매된 수익증권의 환매를 제한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 박광철 팀장은 "증권투자신탁업법이 개정돼 금감위가 지금은 환매제한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 게 사실이지만 개정된 법 부칙에 1년을 넘지 않으면 구법(舊法)에 따라 환매제한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다" 며 "금감위의 환매제한은 적법하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지법 민사합의12부 정장오 부장판사는 "개정된 부칙규정은 98년 9월 16일 이전에 판매한 수익증권에만 해당되며, 그 이후 판매된 수익증권에는 적용될 수 없다" 며 "98년 9월 17일 이후 판매한 수익증권을 금감위가 환매제한할 근거가 없다" 고 말했다.

개정 전 증권투자신탁업법 7조 4항에는 '천재지변, 유가증권시장의 폐쇄.정지 또는 휴장 기타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그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 환매를 연기할 수 있다' 고 명시돼 있었지만 98년 9월 16일 법이 개정되면서 이 조항이 삭제됐다.

다만 개정된 신법 부칙 2조에는 '이 법 시행 당시의 위탁회사에 대한 수익증권의 환매에 관하여는 이 법 시행일부터 1년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부터 적용' 하도록 단서조항을 달았다.

금감위는 이 단서조항에 따라 지난해 11월 2일 서울지법 민사13부가 이미 금감위의 환매제한 조치가 적법한 것으로 판결한 사례가 있는데도 이번에 이를 뒤집는 판결이 나왔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 파장 어디까지〓이번 판결이 법원의 최종판결로 확정될 경우 이는 증권.투신업계의 생존에도 연결되는 파문으로 번질 수도 있다.

한국투자신탁증권 이광희 팀장은 "금감위의 환매제한 조치 자체를 문제삼는 경우라면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며 "증권.투신사 입장에서는 대우채권을 환매해주느라 이미 엄청난 손실을 입었는데 줄소송이 벌어질 경우 대책이 없는 실정"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조치를 따랐다가 손실을 입게 된 금융기관들이 다시 금감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가능성도 있어 대우채 환매제한을 두고 투자자.금융기관.정부의 연쇄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99년 8월 13일 환매제한 조치로 대우 무보증.무담보 회사채 13조4천억원, 기업어음 5조2천억원 등 18조6천억원의 대우 유가증권이 최대 1백80일동안 묶였다.

정부는 99년 당시 90일 이후 환매하면 원금의 50%, 1백80일 이전에는 80%, 1백80일 이상은 90%를 지급하기로 했다가 지난해 2월 7일 이후 환매분에 대해서는 95%까지 환매를 허용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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