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한국의료 지속 힘들다” OECD 권고에도 떼쓰는 의사협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안과에 이어 산부인과·외과·이비인후과 등 입원진료비 정액제(포괄수가제)와 관련한 의사단체들이 모두 수술 거부에 합의해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이들이 진료 거부를 결행하면 2000년 의약분업 파업 이후 가장 큰 의사들의 집단행동이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부분 휴진이 있었고 지난해 9월 조기 위암 내시경 시술(ESD) 진료수가 책정에 반발해 수술을 거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광범위하지는 않았다.

 의사들의 수술 거부 움직임은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고령화에 직면한 선진국의 대부분이 의료비 지출을 합리화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의사들의 입김이 가장 강한 미국에서도 1983년 노인 대상 건강보험인 ‘메디케어’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한국은 ‘의료 과소비 국가’다. 입원일수나 1인당 보건의료비 지출 증가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두 배에 달한다. OECD도 “이대로 가면 한국 의료가 지속가능하기 힘들다”며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을 권고한다.

 의사단체가 포괄수가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진료의 질이 떨어지고 진료수가가 묶여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선진국의 예나 2002년 시범 사업에 참여해온 국내 의료기관을 따져 보면 그런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 진료수가 역시 이번에 평균 2.7% 올랐다. 의사들의 수익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 제도를 확산하기 위해 정부가 올렸다. 보건복지부 배경택 보험급여과장은 “다음 달부터 백내장·제왕절개 등 7개 수술 환자 부담이 평균 21% 줄어 연간 100억원 정도 득을 보고 의료기관들은 98억원의 수익이 늘게 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경실련 등은 수가를 올려준 정부를 되레 비판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어떠한 연유에서도 진료 거부는 있을 수 없다. 의사들이 환자들의 아우성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집단행동은 5월 취임한 대한의사협회 노환규 신임 회장의 대정부 투쟁 전략이 깔려 있다. 선택의원제·의료사고중재제도 등을 반대했지만 회원들한테 외면당했다. 이를 만회하려는 카드로 포괄수가제를 꺼냈다. 그는 의사의 ‘진료권 침해’를 몹시 싫어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포괄수가제가 그럴만한 대상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의대 권용진(의료정책실) 교수는 “지금도 의사가 치료 재료·방법을 결정하는데 국민 선택권 때문에 반대한다는 건 명분이 없다”며 “근거도 없이 떼쓰는 식으로 의사들을 선동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