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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과 황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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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호
정치부문 차장

‘경선 룰’ 때문에 골치깨나 썩었던 이가 강재섭이다. 5년 전 그는 한나라당 대표였다. 이명박-박근혜가 유례없이 격한 경선을 치를 때다. 룰 싸움은 치열하고 길었다. 2007년 전반부를 거의 그리 보냈다.

 룰이 승부를 가를 수 있는 터라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고심하던 강재섭이 중재안을 내놨다. ▶전국 동시경선 ▶선거인단 23만 명 ▶여론조사 반영 비율 일정선 이상 보장 등 세 가지가 핵심이었다. 그걸 이명박 캠프에선 수용하려 했고, 박근혜 캠프는 펄쩍 뛰었다. 박 캠프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반영 방식이라며 결사 반대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어록 중 하나인 “차라리 1000표를 드릴 테니 원안대로 하자”는 말이 그때 나왔다. “이런 식이면 경선도 없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요즘 상황에 비춰보면 그건 격세지감이다. 결국 여론조사 반영방식은 채택이 안 됐다. 대신 전국동시경선 등에 합의하며 경선 룰 싸움이 고비를 넘긴다.

 이 과정에서 강재섭은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했다. 두 진영 다툼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던 그가 나름 결단을 내린 게 중재안이었다. 그는 중재안을 걸면서 결렬되면 대표직은 물론 의원직까지 내놓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그의 입장에선 당이 자칫 깨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이 파동으로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박근혜 쪽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배신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강재섭은 박근혜의 도움으로 이재오를 누르고 당 대표가 됐다. 그런데도 “이명박 후보가 앞선다고 그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중재안을 내놨다”며 분노한 것이다. 이명박 캠프에서도 불만이 대단했다. “강 대표가 경선 흥행을 위해 중재안을 마련했으면 적극 중재를 할 것이지 시늉만 한다. 결국 박근혜 사람 아니냐”고 했다. 그야말로 샌드백이었다.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게임을 하는 선수 사이에서 룰을 정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황우여에게도 비박 계 주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그 역시 박근혜의 도움으로 대표가 됐다. 당 안팎에선 그가 여전히 박근혜계 쪽에 서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비박계에서 요구하는 경선 준비위 대신 경선 관리위의 출범을 강행한 것이 예다. 그래서 이재오는 “대표직을 내려놓고 특정인 캠프로 가라”고 일갈할 정도다. 그에 대한 비박계의 비난은 점점 더할 기세다.

 강재섭이 그랬듯 룰 싸움에서 심판이 선수 양쪽으로부터 칭찬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쪽에서 칭찬을, 다른 쪽에선 비난을 받는다면 그건 더 큰 문제다. 요즘 강경하게만 보이는 황우여지만 그는 원래 조정에 능한 사람이다. 판사 출신이라 더 그렇다. 조만간 룰 논의기구 구성이든, 중재안이든 뭔가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겠나. 실제 움직임도 있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로 보면 강재섭은 경선 승복과 대선 승리를 얻어냈다. 황우여는 과연 어떨까. 아무래도 이번엔 박근혜 쪽에서 쓴소리를 한번 들어야 할 차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