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칠맛 나는 북포트폴리오 만드는 법

중앙일보

입력

정병규 북디자이너(65·정병규학교 대표?사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 1세대 책 전문가다. 기획과 제작을 아우르는 한국 최초의 출판 디자이너로 불린다. 입시 포트폴리오를 위해 학생들도 우후죽순 책을 쏟아내는 요즘 세태를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다가올 20일 열리는 2012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초청돼 북멘토로 강연할 예정인 그를 만났다.
 
-최근 중고생이 저자인 책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얼마 전까지 학생 저자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학생 저자로 대표적인 몇 종류의 책을 살펴봤다. 영어로 쓴 장편소설부터 봉사활동 수기, 여행기 등 소재는 다양해 보였다.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 문제가 많다. 각각의 책에 학생들의 손이 얼마나 갔는지 의심스럽다. 대부분 여러 학생이 모여 대충 내용을 구성해 출판사에 넘긴 것이 학생들이 한일의 전부일 것이다. 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작업은 모두 출판사에게 일임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이렇게 되면 이건 출판사의 책이다. 입시를 위해 노골적으로 만들어진 상업적인 작품이 돼버린다.”

-책을 출판하고 싶은 학생들이 유념할 조언이 있다면.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면 진짜로 진지하게 도전해보라. 책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책을 한 권씩 만드는 과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조장한 면도있다. 책을 전체로 보고 경험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학생다운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살려보라. 애플과 삼성은 디지털의 장점과 아날로그의 단점을 극대화한 상품을 출시했다. 아날로그의 장점과 디지털의 단점을 극대화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흔히 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내용이라 생각할 텐데.

 “책은 원고만 갖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원고 자체는 컴퓨터 화면에서 보나 책 지면에서 보나 다를 바가 없다. 책으로 만들었을 때 컴퓨터 화면에서 읽을 때보다 나은 점이 없다면 책을 만들 필요가 없다. 학생들의 수기도 마찬가지다. 책을 만들기 전엔 내용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책 내용이 디지털 화면 밖으로 나올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원고를 제외한 책의 나머지 과정들이다. 책의 서체나 종이재질, 편집과 제본방식 등을 활용했을 때 내용의 가치가 살아날 수 있어야 한다. 원고가 완성된 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가공을 거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원고를 제외한 나머지 작업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똑같은 원고를 가지고 작업하더라도 전혀 다른 책이 탄생할 수 있다. 완성된 책은 결과물 자체가 내용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나타낸다. 예컨대 제본방식 하나만 봐도 내용의 특징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양장본이라면 집에서 사색하며 신중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읽기 쉽고 가벼운 내용이라 이동성을 강조한다면 페이퍼북이나 문고판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양쪽으로 펼친 책의 두 면에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독자의 가독성과 이해도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또 책의 표지·무게·두께까지도 고민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고민하는 시간이 핵심이다. 단순히 원고만 작업해서 만든 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러 가지를 배우고 얻을 수 있다.”

● 정병규 대표는 1946년생, 고려대 불문과 졸, 전 민음사 편집부장, 전 홍성사 발행인, 서울시 디자인올림픽 자문위원, 2006년 한국출판인회 특별공로상, 2010년 제51회 한국출판문화상 백상특별상 수상, 현 중앙일보 편집국 아트디렉터, 정병규학교 대표.

<글=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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