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탈 난 생명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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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책 생명과학 연구의 본산인 대전 대덕단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정혁)이 국내외 투자 사기 분쟁과 기술료 뻥튀기 의혹에 휘말려 진통을 겪고 있다. 연이은 사건으로 지난달 21일 정 원장이 스트레스로 쓰러져 정상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등 행정 공백마저 빚어지고 있다. 1985년 설립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은 박사급 연구원 200여 명 등 500여 명이 일한다.

 6일 생명연과 과학계에 따르면 정 원장은 자신이 개발한 씨감자를 상업화하기 위해 2011년 8월 생명연 1호 연구소기업으로 ㈜보광리소스를 설립했다. 하지만 최근 이 회사 K 전 대표의 사기성 국내외 투자 계약 분쟁과 설립 자본금 횡령 사건이 터졌다. 보광리소스의 자본금은 10억1100만원으로 생명연은 기술을 출자하는 대신 20.9%의 지분을 확보했다. 연구소기업은 정부가 국책 연구소 기술의 상업화를 장려하기 위해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문제는 최근 투자자들이 투자금 반환 등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이 회사 정찬익(경북대 교수) 대표는 “K 전 대표가 설립 때 납입 자본금을 낸 것처럼 꾸민 뒤 한 푼도 안 내고, 금융기관에서 자본금으로 대출받은 돈은 횡령했다. 또 생명연 허가 없이 국내는 물론이고 몽골과 카자흐스탄 등에 기술을 이전한다는 ‘사기성 계약’을 수십 명과 한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계약액이 1인당 6억원 등 다양해 피해 규모가 클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생명연의 관리 감독 허술로 국내외 투자자들이 국책 연구소가 세운 회사로부터 사기를 당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 대표는 “곧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기술 이전 계약료 뻥튀기 의혹도 불거졌다. 생명연 이우송 박사는 2009년 조류 인플루엔자(AI) 예방 가능 사료 첨가제를 개발해 기술 이전 계약료 30억원, 매출액의 일정액을 주는 러닝 로열티 270억원의 조건으로 전북 정읍 소재 ㈜스테비아와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그 당시 기술료 계약 금액은 모든 국책 이공계 연구소 사상 가장 큰 액수였다. 이 박사는 그 공로로 정부 산업포장 등 여러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업체가 내놓아야 할 30억원 중 생명연이 받은 기술료는 6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러닝 로열티도 한 푼도 입금되지 않았다. 생명연은 곧바로 기술을 회수해야 하는데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과학계에서는 “가장 순수해야 할 과학자들이 성과에 급급해 뻥튀기 계약을 하며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 박사는 “회사가 생산설비에 15억원을 투자하는 바람에 기술료를 낼 여력이 없을 뿐 뻥튀기 계약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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