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롯데 포함 7곳 “2분기 실적 악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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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오일뱅크 권오갑(61) 사장은 지난 4일 오전 급히 임원들을 불러 모았다. 유럽 경기의 불안감이 지속되고 중국 경기 역시 부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는 데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이 8.2%로 11개월 만에 오름세로 방향을 바꿨다는 소식에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크게 내렸기 때문이다.

 1시간 넘게 진행된 회의에서 임원들은 전 사업장에서 30분씩 일찍 출근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결정했다. 또 각 사업본부별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고, 통제 가능한 예산에 대해서는 최대 20%까지 절감하기로 했다.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권 사장은 “경제상황이 불투명한 만큼 긴장 상태를 유지하자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회사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2월 이후 4년4개월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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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존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글로벌 경제 위기에 국내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이미 비상경영체제를 도입하고,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는 중이다. 중앙일보가 국내 10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10곳을 대상으로 5일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현대자동차·롯데쇼핑·대한항공 등 7개 기업이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낮게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업종 불황까지 겹친 포스코는 예상 실적보다 10% 넘게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든 기업들이 올 하반기까지는 경기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GS칼텍스와 대한항공은 현금 확보에 들어갔고, SK텔레콤과 ㈜한화는 예정된 인수합병(M&A)도 경제상황이 안 좋아질 경우 축소할 수 있다고 답했다.

 7개 기업은 현대오일뱅크처럼 최고경영자(CEO)가 주재하는 대책회의를 수시로 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25~27일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다. 평년보다 보름 앞당겼다. 이에 앞서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달 29일 사장단과 오찬 회동을 하고 유럽발 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3주간의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이 회장은 “유럽 경기가 생각보다 더 나빴다”고 언급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일 “유럽 위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듣겠다”며 출장길에 올랐었다.

 해외 판매 물량 가운데 6분의 1가량을 유럽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는 시장 동향을 24시간 365일 감시하는 실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했다. 주요 변동 사항은 수시로 정몽구(74) 회장에게 보고된다. 구본무(67) LG그룹 회장은 5일부터 한 달 동안 계열사별 ‘중장기 전략보고회’를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최태원(52) SK그룹 회장 역시 유럽 경기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임수길 SK 상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SK경영경제연구소로부터 1주일에 한 차례 유럽 관련 보고를 받고 있으며, 특히 올해 인수한 하이닉스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은 안 좋지만 기업들은 올해 예정된 채용과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실업문제 해소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2만6000명을 공개 채용하기로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7500명, LG그룹은 1만5000명, SK그룹은 7000명을 공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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