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러 결속으로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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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미국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 극동에서 중동까지 드넓은 아시아를 무대로 미국 중심의 친미(親美) 진영과 중국·러시아 중심의 반미(反美) 진영이 대립하는 신(新) 냉전적 대결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치열한 세력 다툼의 향배와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상황이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0% 가까이를 차지하게 될 아시아에서 밀려나는 것은 21세기 경쟁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 미국으로선 절박한 문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전략의 중심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겼다고 천명했다. 아시아 순방에 나선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은 2020년까지 미 해군전력의 60%를 태평양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현재 50 대 50인 태평양과 대서양 배치 해군전력 비율을 조정해 아시아 쪽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는 게 목적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맞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초 크렘린궁 주인으로 복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하고,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했다. 그제 베이징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중·러 밀월 시대의 개막을 선포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중 두 나라의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어떤 국제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북한 핵, 이란 핵, 시리아 사태 등 국제적 이슈에서 두 나라는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중·러 및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안보협력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준하는 군사동맹체로 발전시켜 나갈 가능성도 있다.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SCO 정상회의에 중국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을 옵서버 자격으로 초청했다. 2014년 말로 예정된 나토군의 아프간 철수에 맞춰 아프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일본·필리핀·태국·호주 등 핵심 동맹국 및 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등 핵심 파트너와의 결속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 편을 들어주고 있는 것도 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이다.

 패권 경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중·러의 대립이 격화될 경우 한반도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서해상 군사훈련을 둘러싸고 양 진영 사이에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일본은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최대의 교역 파트너인 중국과 동맹국인 미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도의 외교력이 요구된다. 북한 핵 문제는 물론이고 통일을 위해서도 미국과 중국, 러시아 모두의 협조와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외교가 고난도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