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은퇴자 건보료, 공평 부과가 핵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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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들에 대한 보험료 징수 방식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특히 55세 이상 은퇴 연령대 장년층의 하소연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4일부터 본지가 3회 연재한 ‘불평등 건강보험료’ 시리즈 보도에 따르면 소득 한 푼 없는데 건강보험료를 내야 하는 장년층이 109만 가구나 된다. 딸린 식구를 포함하면 221만 명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오래전에 만든 건보료 징수 방식에 맞춰 세대원 숫자와 종합소득·재산·보유 자동차에 맞춰 소득이 없어도 건보료를 내야 한다. 달랑 살 집 한 채, 낡은 생계용 또는 생활용 자동차 한 대 있는 은퇴자도 적지 않은 건보료를 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은퇴하고 소득이 줄거나 사라졌는데도 건보료는 직장에 다닐 때보다 더 많이 내야 하는 경우도 생겨 민원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재산을 처분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1977년 직장의료보험 도입 때부터 월급의 일정 비율을 내고 있는 직장인과 딴판이다. 직장가입자에게는 월소득을, 지역가입자에게는 종합소득과 재산을 건보료 산정 기준으로 삼는 이중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88년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할 당시 지역가입자 가운데 소득자료가 세무당국에 확보된 사람이 44%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지역가입자들의 정확한 소득 파악이 어렵자 이런 기형적인 방식으로 생활 정도를 추정해 건보료를 매겨왔다.

 당시에는 지역가입자 가운데 고소득 자영업자가 많아 이런 방식도 어느 정도 합리성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상황이 변했다. 건보제도 도입 당시 지역가입자에 속했던 의사·변호사·임대사업자·대형음식점 주인 등은 그동안 대부분 개인사업체를 사업장으로 만들면서 직장보험으로 빠져나갔다. 건보공단과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 결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절반(50.6%)은 노인·실업자·주부·학생 등 일자리가 없는 미취업자, 13.7%는 임시직·일용직·무급 가족종사자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사회적 약자가 지역가입자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런 사회적 취약계층이 살고 있는 집이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를 추정 소득의 기준으로 보고 건보료를 매기는 것은 더는 설득력이 없다. 아울러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만 가족 숫자에 맞춰 건보료를 부과하는 ‘인두세’적인 방식은 하루빨리 폐지해야 옳다.

 이제는 과거와 달리 자동차는 생활필수품이 됐으며 카드 사용 확대 등으로 소득 파악률도 높아졌다. 따라서 자동차를 건보료 산정 기준으로 삼는 건 낡은 방식이다. 더 이상 산정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 살고 있는 집을 비롯한 재산도 마찬가지다. 임대소득이 나지 않는다면 이를 산정 기준으로 삼는 건 불합리하다. 대신 카드 사용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가입자의 소득 근거를 찾아내 건보료를 산정해야 한다. 소비를 근거로 건보료를 산정하는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어떤 방식이든 ‘재산 대신 소득’을 건보료 산정의 대원칙으로 삼아 기준을 대대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직장가입자들에 대한 부과 기준도 사회 변화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과거엔 직장가입자들은 유리알 지갑이라고 해서 소득이 대부분 공개돼 상대적으로 지역가입자보다 많은 건보료를 낸다는 불평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역가입자의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인 상황에서는 형평에 맞춰 부과 방식을 조정해야 마땅하다. 직장가입자는 현재 월급만 가지고 부과하고 있는데 월급 외 사업·임대·이자 등 다양한 소득을 합친 종합소득에 대해 부과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지역가입자와 형평이 맞으며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한다는 원칙도 바로 설 수 있다. 같은 원칙에 따라 건강보험 상한선 인상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봄 직하다. 이를 통해 초고소득자들이 소득에 걸맞지 않은 건보료를 내는 경우를 막고 추가 건보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건보료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공평 부과다. 대대수 민원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이를 위해선 건보 당국은 물론 국세청 등 관련 기관이 공조해 자영업자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범부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건보료 개혁은 단순한 건보제도 개선으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