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건보료 고지서는 암호문 … 가입자 “뭔 말이냐” 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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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건강보험 가입자들은 매달 말 고지서를 받으면 다음 달 10일까지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전국 건강보험공단 지사에는 가입자들의 불만이 넘친다. 지난달 초 취재진이 건보공단의 한 지사에 갔을 때 70대 노부부가 와서 재산 건보료의 부당성을 4시간 동안 항의하기도 했다.

 건보공단 직원들이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직장 건보료는 월급의 5.8%를 낸다. 기업의 건보 담당자들이 알아서 한다. 본인이 얼마를 내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역 건보료는 암호문이다. 소득이 75등급, 재산이 50등급, 자동차가 7등급(28개 테이블)으로 돼 있고 세 항목을 등급별로 점수(①)를 매긴다. 여기에 연간 과세소득이 500만원이 넘으면 이 점수에다 170을 곱하면 건보료가 된다. 500만원이 안 되면 성·연령에다 재산·자동차를 또 따져 점수(②)를 계산하고 ①과 ②를 더해 계산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된 데는 지역가입자의 특성 때문이다. 1988년 농어촌, 89년 도시 자영업자로 건강보험을 확대할 때 소득·재산·자동차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간접 잣대로 재산과 자동차를 집어넣었다. 98년 9월까지는 건강보험이 366개 조합으로 돼 있어 크게 문제될 게 없었다. 따로따로 살림을 하다 보니 부과 방식이 다른 데도 있었다. 자치주의였다.

 98~2000년 366개 조합을 합쳐 지금의 건보공단이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부과 방식이 한 번 더 달라진다. 연간 과세소득 500만원을 기준으로 부과 방식을 둘로 쪼갰다. 500만원이 넘는 경우는 종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이하는 여기에다 한 단계 더 따진다. 성·연령·재산이다. 500만원 이하는 남녀·연령, 재산과 자동차는 어떤지 등을 따져 소득을 추정했다. 세계에 없는 정교한 방식을 만들었으나 불만의 진원지가 됐다.

 현행 따로따로 부과 방식이 있기까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조합주의를 주장한 보수 쪽에서 “보험료 부과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돈주머니를 하나로 할 수 있느냐”고 건보 통합에 반대했다. 부유한 직장조합과 가난한 지역조합, 지역조합 내에서 부자와 가난한 조합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며 진보 측이 밀어붙였다. 대신 단일 부과 방식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통합 주무 장관이었던 차흥봉(현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퇴임 후에도 단일 방식을 만들려 했지만 실패했다. 국내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가세해 2000년 이후 9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렇게 12년이 흘렀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건강보험 통합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현행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지역가입자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본다. 그래서 10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건강보험공단 부과체계개선 TF팀, 한국재정학회·한국보건사회연구원·조세연구원 용역팀이 각각 개선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7월께, 재정학회팀은 10월께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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