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네타, 중국 앞바다서 베트남과 손잡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베트남의 남부 해안에 위치한 깜라인(Cam Ranh)만을 찾은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감회에 젖은 모습이었다. 패네타 장관은 3일(현지시간) 깜라인만에 정박 중인 미 해군 수송선 ‘리처드 버드’호 선상에서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나는 베트남전 종전 이후 37년 만에 깜라인만을 찾은 첫 미국 국방장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미국과 베트남 관계의 상징”이라고도 했다.

 깜라인만은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1905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기항한 곳이며, 1965년 베트남전쟁 중에 미군은 이곳을 핵심 전략지역으로 삼고 대규모 기지를 설치했다. 베트남전이 끝난 뒤 냉전시대에는 옛 소련(러시아)이 사용하다가 2002년 베트남 측에 반환했다.

 패네타는 이곳에서 미국과 베트남 간의 “신동반자 관계”도 선언했다. 그는 “과거 미국과 베트남은 여기에 엄청난 양의 피를 뿌렸다”며 “하지만 우리는 과거에만 매여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속내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그는 “깜라인만에 미 군함이 접근하는 건 미·베트남 양국 관계의 핵심 요소”라며 “미 해군 함정이 유럽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베트남 같은 동반자와 협력해 이런 항구를 이용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루 전 패네타는 싱가포르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현재 태평양과 대서양에 50대 50으로 배치된 미 해군 함정을 2020년까지 60대 40으로 재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 상황에서 늘어난 규모의 미 해군 함정이 머물 수 있는 후보지 중 하나로 남중국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깜라인만을 적시한 것이다.

 베트남과 중국은 최근 남중국해 시사(西沙·파라셀) 군도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패네타는 “신동반자 관계”를 역설하며 깜라인만을 미 해군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베트남 측에 손을 내밀고 있다. 패네타는 “우리는 특히 남중국해에 초점을 맞춰 베트남과 협력하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베트남 측도 남하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깜라인만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을 은근히 끌어들이는 눈치다.

  중국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푸잉(傅瑩)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싱가포르의 연합조보에 낸 기고문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중·미 관계가 불편해지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중·미 양국은 서로 곤란하게 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