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에 관심 큰 한국사회, 희망 있다는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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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오른쪽)가 3일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시장과 함께 자본주의의 미래와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서울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하면 사람들은 보통 건강과 시간을 떠올린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59·Michael Sandel)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시장(market)의 합리성에 의문을 던진다. 돈으로 사고파는 대상이 늘면서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람을 인격체보다 ‘사물’로 대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써 한국 사회에 정의론 선풍을 몰고 왔던 샌델이 박원순(56) 서울시장과 만나 시장의 미래와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샌델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선 돈과 시장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졌다”며 “이는 불공정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3일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열린 두 사람의 대담을 본지가 단독으로 중계한다.

 ▶박원순=책에 보면 돈으로 거래되는 예로 암표 얘기를 썼던데, 지난달 1일 당신의 연세대 강연 때도 (무료 입장권을 구하지 못하자) 암표가 돌았다고 들었다.

 ▶샌델=한국 사회에서 거대 담론(big issue)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박원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마치 한국인을 위해 쓴 것 같다. 우리도 시장과 자본주의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샌델=한국에서는 시장가치와 다른 가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한국인들은 무엇이 공동체의 선(善)인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새치기(queue-jumping)를 많이 언급하던데, 우리 사회처럼 새치기가 일상화돼 있고 제도화된 나라도 없다.(웃음)

 ▶샌델=예를 들어줄 수 있나.

 ▶박원순=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먼저 받기 위해 개인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샌델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종합병원 수술과 관련된 편법은 새치기로만 볼 게 아니라 차라리 돈을 받고 먼저 치료해주는 패스트 트랙을 제도화해 그 수입으로 저소득층 진료비를 감면해주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샌델=나는 그런 주장에 반대한다. 기여입학제가 그런 경우인데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지만 고등교육의 목적과 순수성을 훼손할 수 있다. 의료 혜택은 더 어려운 문제다. ‘돈을 벌어 취약계층을 돕자’는 가치와 ‘부(富)가 기준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돼야 한다는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두 가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박원순=한국 사회의 새치기 중에는 음성적인 로비도 심각하다.

 ▶샌델=힘은 시장에 있다. 바로 옆에 정부가 있다. 시민사회도 한 축이다. 시장과 로비의 힘을 막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힘을 통해 시민사회의 말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의 힘을 키워 새치기를 막을 수 있어야 한다.

 ▶박원순=한국에서 기업과 시장의 역할은 커지고 있지만 오히려 시장에 대한 관심과 감시는 줄고 있다. 이런 한국적 상황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인가, 특별한 것인가.

 ▶샌델=2008년 금융 위기가 시장과 돈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으로 봤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선 돈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선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가 민주 정치를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다.

 (샌델과 아산정책연구원의 공동 조사 결과 미국인보다 한국인들이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훨씬 높다. 한국 74%, 미국 38%.)

 ▶샌델=나는 미국 사회가 공정성에 대해 안이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비율이 높은 것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국인의 의지가 강한 것이라 본다.

 ▶박원순=한국인이 (미국인보다) 더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과 자체보다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본다. 나는 사회 인프라가 단지 항구·도로뿐 아니라 그런 사회적 신뢰도 포함된다고 본다. 무소속으로 나온 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당적이 없는 안철수씨가 유력한 대선 후보로 간주되는 것도 기존 제도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샌델=불법 포획한 돌고래를 바다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박 시장이) 한다고 들었다. 막내아들이 대학원에서 영장류 공부를 하고 있는데 투철한 동물보호운동가다. 여름 방학 때 우간다에 야생 침팬지를 공부하러 간다. 아들에게 박 시장 얘기를 들려주겠다.

◆마이클 샌델= 미국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 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7세의 최연소 나이로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존 롤스를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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