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센츄리 베스트 1. 긴데쓰 - 벤치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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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소개될 나머지 11팀에서도 마찬가지가 되겠지만, 긴데쓰 버펄로즈같이 '허약한' 역사 속에서도 안타깝게 라인업에 들지 못해 벤치 신세 (?)를 져야 하는 이들이 꽤 있다.

특히, 나시다와 한때 '트윈 시스템'을 구축하며 안방을 지키다 작 팀의 전성기 시에는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지 못해 아쉽게 벤치멤버로 전락한 아리타 슈조 (有田 修三, 포수), 차라리 긴데쓰에서 재활 훈련을 꾸준히 했더라면 지금도 전성기의 기량을 펼쳤을 이시이 히로오 (石井 浩郞, 1루수, 요미우리에서 활약했었다), 동급 최강의 공격력을 지녔던 '블룸' 잭 블룸필드 (Jack Bloomfield, 2루수), 5 ~ 60년대 팀의 기둥이였던 고다마 아키토시 (小玉 明利, 3루수), 동시대 최강의 2번 타자이자 훗날 이치로의 '진자 타법'을 완성 시켜 주었던 아라이 히로마사 (新井 宏昌, 외야수) 등은 진정 안타깝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1) 벤치

아리타 슈조, 야마시타 카즈히코 (포수), 이시이 히로오, 필 클락 (1루수), 잭 블룸필드 (2루수), 고다마 아키토시, 하다 고이치 (3루수), 스즈키 다케시 (유격수), 오가와 토오루, 터피 로즈, 사사키 쿄스케, 나가부치 유조, 아라이 히로마사, 클라렌스 존스, 히라노 미츠야스 (외야수), 간베 토시오, 도쿠히사 토시아키, 야나기타 유타카, 무라타 타츠미, 이모토 다카시 (투수)

(2) 최고의 감독

긴데쓰는 역사상 단 3번 리그 우승을 경험해 보았다. 긴데쓰의 유니폼을 입고 헹가래를 받은 감독은 단 두명. 니시모토 유키오 (西本 幸雄)와 오기 아키라 (仰木 彬)다. 오기 아키라는 긴데쓰 역사상 꼴찌를 경험안해본 단 3명의 감독 중 하나다. 재임 기간 내내 팀을 A클래스에 올려 놓으며 그 역량을 인정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긴데쓰 역사상 최고의 감독은 니시모토 유키오라 해야 한다. 꼴찌만 안해도 다행이고, B클래스에 머무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팀을 '잠시나마' 리그 내 최강의 팀으로 바꾸어 놓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야구는 개개인의 능력치 만큼이나 정신력도 무시할 수 없는, '멘탈 게임'의 측면도 강하기 때문이다. 니시모토 휘하의 긴데쓰는 `79, `80 시즌을 연이어 제패하였고, 니시모토는 79년도 쇼리키 마쓰다로 상을 수상 하면서 그 공로를 인정 받았다.

(3) 최고의 시즌

연이어 리그를 제패하였던 `79, `80 시즌은 어느 시즌이 더 좋았다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훌륭하다. `80 시즌의 팀타율 .290, 팀득점 791, 팀루타 2249, 팀타점 764, 팀홈런 239는 퍼시픽 리그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분명히 공격력은 타팀을 압도하는 중량감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승률은 겨우 .557 였다. 언뜻 이해 가지 않을지 모른다.

이처럼 '비교적' 낮은 승률을 기록한 이유는 '다름 아닌' 투수력 때문이었다. 5점대에 달하는 팀 방어율 (4.96, 4위)은 타선이 벌어놓은 점수를 깎아 먹을 뿐이었다. 완벽한 팀은 투-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팀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최고의 시즌은 최초의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던 `79 시즌이 되어야 겠다.

`79 시즌은 선발 라인업 전원이 10홈런 이상, 1-3-5-7-9번이 도루 10개 이상을 기록하였으며, 스즈키 케이시를 위시한 선발진에서 10승 투수 4명 이상이 배출되는 등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던 시즌이다. .285의 팀타율과 3.70의 팀방어율은 리그 1위였다.

(4) 최악의 시즌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100패의 위업(?)은 단 한차례 달성되었다. 그 시즌은 긴데쓰의 `61 시즌이었고, 감독 치바 시게루는 선수 생활동안 이룩해 놓았던 빛나는 이름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말았다. 팀 리더 고다마 아키토시, 신인왕 도쿠히사 토시아키만이 '야구 선수'라는 직함에 걸맞은 활약을 보였을 뿐이다. 승률은 2할 6푼 1리였다.

(5) 최고의 시즌

<타자> - 매뉴얼의 `79 시즌은 MVP 다운 성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매뉴얼의 최고 시즌은 이듬해 `80 시즌이었다. 니혼햄의 '괴물 신인' 기다 이사무의 눈부신 피칭에 가려 MVP 2연패에는 실패하였지만, 역대 어떤 용병들의 최고 커리어에도 모자람이 없는 화려한 성적이었다. 149안타, 48홈런 (1위), 129타점 (1위), 타율 .325를 기록하였다.

<투수> - 스즈키 케이시는 한팀의 에이스로써 거의 매년 모자람이 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78 시즌은 그가 최초로 다승과 방어율 1위를 석권한 해였다. (방어율 2.02, 25승 10패, 승률 .714, 178삼진, 66사사구) 그러나 아쉽게도 정답은 스즈키 케이시가 아니다.

최고의 시즌은 바로 노모 히데오의 데뷔 시즌이었던 1990년도이다. 노모는 프로의 마운드를 밟은 첫해에 방어율 1위 (2.91), 승률 1위 (.692), 다승 1위 (18승), 탈삼진 1위 (287), 투수 횟수 1위 (235이닝)의, 신인으로썬 '경이로운' 기록을 작성해 내었다.

이같이 신인으로써 전부문에 걸쳐 '괴물'같은 활약을 펼친 예는 곤도 히로시 (주니치)의 `61 시즌과 기다 이사무 (니혼햄)의 `80 시즌 뿐이다. 노모 히데오는 MVP와 신인왕을 거머 쥐었으며 동시에 사와무라상도 수상하였다. 특히 `90 시즌의 탈삼진율 10.99는, `98 시즌 야쿠르트의 좌완 이시이 카즈히사가 11.05로 경신하기 까지 일본 야구 사상 최고의 기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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