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파 출당 총대 멘 강기갑 … 4년 전 일심회 악몽 때문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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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강기갑 통합진보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26일 이석기·김재연 등 당권파 비례대표 당선인 4명에 대한 출당 절차를 시작한 것과 관련해 “진보정치 공멸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한쪽 팔을 잘라내는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본 이상 채찍을 내려쳐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당권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출당 조치를 밀고 나갈 것임을 재차 분명히 한 셈이다.

 공교롭게 강 위원장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 마주쳤다. 민노당은 2008년 ‘일심회’ 간첩사건으로 큰 내홍을 겪었다. NL(자주파) 계열인 최기영 당시 사무부총장이 민노당 인사들 동향을 북한에 전달한 혐의가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PD(평등파) 계열의 심상정 위원장이 주도하던 민노당 비대위는 이를 강하게 비판하고 경기동부연합 소속 당직자를 전원 대기발령했다. 그리고 그해 2월 임시 전당대회에서 ‘당내 종북주의 청산’을 내세우며 최씨 등에 대한 제명 안건을 상정했다. 그러나 당권파는 이를 극렬하게 막았고, 수적 열세를 절감한 심 위원장 쪽은 당을 떠났다.

 민노당 분당 후 당 대표직을 맡은 게 강 위원장이다. NL 계열이지만 경기동부연합 소속은 아니었던 강 위원장이 지금처럼 뒷수습의 책임을 진 거다. 그러나 그는 경기동부연합의 요구대로 대기발령했던 당직자들을 모두 복귀시켰다. 경기동부연합과의 타협이었다. 분당의 발단이 됐던 최기영씨는 출소 후 민노당 부설 연구소에 재취업했다. 당원 관리를 총괄하던 백승우 총무실장은 대기발령 상태에서 벗어나 오히려 민노당의 사무부총장으로 승진했다. 백씨는 당권파 김미희 당선인의 남편이다. 그는 통합진보당에서도 사무부총장을 맡았다.

 그때 강 위원장이 구제해준 당권파 핵심 당직자들은 이번 사태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청호 부산 금정구 의원은 온라인 투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소스 코드’를 열어본 당사자로 백씨를 지목하고 있다.

 2008년 민노당 분당 당시 최고위원을 지낸 최순영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대기발령된 경기동부연합 출신들을 강기갑 대표가 그대로 다 받아줬다”며 “그때 잘 정리했으면 (지금) 괜찮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한 적이 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최 전 의원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당내에 꽤 있고, 강 위원장도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이 과거와 달리 단호한 대응을 보이는 것도 그때 이후 당권파에 크게 데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일심회 사건=2006년 10월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간첩단 사건. 북한의 직접 지령을 받은 재미교포 사업가 장민호(마이클 장)에게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이 포섭돼 당 주요 인사 300여 명의 자료를 북한에 넘긴 혐의로 3년6개월을 복역했다. 그는 통합진보당 출범 때 정책기획실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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