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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장인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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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덕일
역사평론가

제자 번지(樊遲)가 농사일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請學稼) 공자는 “그 일은 내가 늙은 농부보다 못하다(吾不如老農)”고 사양했다. 농사는 전문가에게 물으라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는 “모든 공인(百工)은 가게에 있으면서 그 일을 이루고, 군자는 학문으로써 그 도에 이른다”고 말했다. 공인과 군자는 각자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란 뜻이다. 그런데 어느덧 군자(?)가 사회의 윗자리를 독차지해서 모든 공인들을 천시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숙맥(菽麥)이란 세상 물정 모르는 식자(識者)를 조롱하는 말이었다. 콩과 보리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불변숙맥(不辨菽麥)의 준말인데, 『춘추좌전(春秋左傳)』 노(魯) 성공(成公) 18년 전(傳)에 “주자(周子)에게 형이 있는데 지혜가 없어 숙맥을 변별하지 못해서(不能辨菽麥) 자립할 수 없다”는 말이 출처다. 후한(後漢)의 고봉(高鳳)은 아내가 닭이 쪼아 먹지 못하게 보리를 지키라고 했는데, 소나기가 쏟아지는데도 장대만 잡고 경서를 봤다는 인물이다. 그나마 그는 조정의 부름도 사양했기에 후대에 공부하는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

 이는 특수한 경우고 지금 한국 사회처럼 대부분은 출세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고대 남조 송(宋)나라 역사서인 『송서(宋書)』 ‘심경지(沈慶之)열전’에는 심경지가 임금에게 “농사는 사내종에게 물어야 하고, 길쌈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하는데(耕當問奴 織當問婢) 폐하께서는 지금 정벌을 의논하시면서 백면서생배(白面書生輩)들과 모의하시니 어찌 일이 되겠습니까?”라고 비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북벌을 추진하던 조선 효종도 심경지의 말을 인용하면서 비변사의 낭청(郞廳)을 뽑을 때 “지혜와 힘이 있는 자를 뽑지 않고, 다만 글자나 아는 영리한 자를 뽑는다”고 비판했다.

 조선 후기 주자학자들은 모든 노동을 천시했다. 이런 사회에서 직접 농사를 지었던 성호 이익(李瀷)은 보리타작(打麥)이란 시에서, “떨어진 이삭은 아이에게 줍게 하면서/ 도리깨질에 힘을 더하네/ 나도 마시는 막걸리는/ 아내가 직접 빚은 술일세”라고 노동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당(唐)나라 때는 농군을 선발하기 위한 역전과(力田科)도 있었다. 당나라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회를 이룩한 데는 노동 중시의 철학이 있었다.

 독일에서 장인(匠人)을 뜻하는 마이스터(Meister)는 박사·의사를 뜻하는 독토르(Doctor)와 마찬가지 대접을 받는다. 유럽 경제위기에 독일만 꿋꿋하게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교육은 무너졌다는 한탄이 주를 이루는데도 고졸 출신이 차별받는 나라. 이런 사회구조를 뜯어고쳐야 한국 사회에 미래가 있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