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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희생 줄이고 줄여 더 빛난 팔루자 승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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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11면

팔루자 점령 작전에 참여한 미군 병사가 현지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미군은 점령 직전 민간인 소개작전을 치밀하게 펼쳤다. [팔루자 AP=연합뉴스]

결과가 중요한지, 아니면 과정이 중요한지를 생각해볼 때가 있다. 거의 9년 동안이나 끌었던 이라크 전쟁은 2011년 12월부로 끝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철수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2003년 이라크 침공 결정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체로 사람들은 과정보다도 결과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전쟁을 평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전쟁을 말할 때 우리는 그저 “이겼느냐, 졌느냐”만 묻는다.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27> 결과냐 과정이냐

그러나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한 법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해’가 있었다면 그 결과로 얻은 승리는 최선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후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팔루자(Al-Fallujah) 탈환작전을 보면 나름대로 최선의 승리를 위해 사전에 얼마나 고심하며 여러 과정을 밟았는지 알 수 있다.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69㎞ 떨어진 곳에 있는 팔루자는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도시다. 약 28만5000명의 도시 인구 중 수니파가 90% 이상이어서 흔히 ‘수니 삼각지대’라고 부르는 곳이다.

또한 이라크 전쟁 전에 사담 후세인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지역이며, 중동 테러리즘 세력과 반미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이어서 ‘저항의 도시’라고도 불렀다. 2004년 4월 미군이 팔루자를 공격해 시아파와 격전을 벌였고, 10월 하순에는 1000여 명의 미국·이라크 연합군이 포위해 첨단 정밀무기로 공격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무고한 민간인만 사살한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미군은 눈엣가시인 팔루자를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2004년 11월 초 대대적 공격을 준비한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이 골탕을 먹고 있는 부분이 바로 민간인의 희생이다. 공격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정치적으로 미국의 입장이 더욱 곤란해지고, 이로 인해 군사행동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물·전기 끊고 위협 공습으로 등 떠밀어
단순히 승리라는 결과만을 얻으려고 한다면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한 방에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공세에 앞서 미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 여론을 이용했다. 미군은 앞으로 팔루자 지역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매우 잔혹할 것이며, 이는 민간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팔루자 지역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전투가 벌어질 때 반미 무장세력들이 민간인을 방패 삼아 죽게 할 수도 있다고 선전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민간인이 팔루자를 떠났다. 둘째, 생활기반을 파괴해 민간인을 이주시켰다. 11월 7일 미군은 유프라테스강의 수력발전소를 파괴했고, 수원과 전원을 단절시킴으로써 시민들이 할 수 없이 팔루자를 떠나게 했다.

셋째, 위협을 가해 민간인을 떠나도록 만들었다. 이는 실질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는데, 도시 중심에 10여 차례의 대규모 공습과 포병 사격을 실시하자 약 28만여 명의 시민 중 70%가량이 도시를 떠났다. 넷째, 전투 중에 움직이는 민간인은 모두 적으로 간주해 사격을 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총공격이 시작되자 미군은 대형 스피커를 이용해 팔루자 지역 외곽에서 15~50세의 남자는 팔루자 지역을 통과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이를 어길 시에는 미군의 사격 목표가 됐다. 이는 팔루자 지역 내에 있는 반미 무장세력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소한 민간인에 대한 오인 사격을 줄여보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러한 사전 정리 작업을 끝낸 11월 8일 ‘팬텀 퓨리(Phantom-Fury)’라는 작전명으로 미군의 총공격이 벌어졌는데, 6일간의 격전 끝인 11월 13일 팔루자 도심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 반미 무장세력 2000명이 사살됐고, 미군은 54명이 전사하고 425명이 부상했다. 팔루자의 민간인 희생은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지만 그 전의 어떤 전투에서보다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승리를 달성한 후에도 흔히 언론에서 떠드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오명은 없었다. 오히려 팔루자 전투는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도시를 탈환한 모범 사례로 미 국방부가 미래 전투의 전형으로 삼기도 했다. 이렇게 최선의 승리를 위해 그 과정을 중시했던 미군의 팔루자 탈환작전은 손자병법의 원리에 충실했다.

손자병법 허실(虛實) 제6편에 보면 “사람들이 다 내가 이긴 겉모습만을 알고(人皆知我所以勝之形), 내가 어떻게 해서 이길 수 있었는지 그 속은 모른다(而莫知吾所以制勝之形)”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구분된 개념이 나온다. ‘승지형(勝之形)’과 ‘제승지형(制勝之形)’이다. ‘승지형’이라는 것은 이겼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그 형태를 말한다. 이기는 그 모습, 즉 아군의 포탄에 의해 적의 진지가 파괴되고,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드러난 모습을 말한다. 반면 ‘제승지형’이라는 것은 그러한 ‘승지형’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과정상의 여러 조치를 말하고 있다.

사전에 간첩을 보내 적의 정보를 파악한다거나, 적이 오판할 수 있도록 위장 진지나 모의 전차를 설치한다거나, 적을 안심시키고 방심시키기 위해 평화회담을 제의한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활동이다. 사실상 ‘승지형’보다도 ‘제승지형’이 승리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바로 이런 ‘제승지형’을 위해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전투 현장에서 싸울 때는 그저 ‘전술’적 행동이 필요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멀리 보고, 크게 보는 ‘제승지형’의 전략이 요구된다.

‘제승지형’은 이기기 위해 사전에 여러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다고 해서 이러한 ‘제승지형’을 소홀히 한다면 실제로 전투를 벌일 때 많은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돈이 많이 들지라도 큰 차원에서 이익을 보려면 ‘제승지형’을 잘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복잡하게 작동되는 기계도 그 원리는 보이지 않는다. 용병의 최고 경지는 손자가 말한 ‘무형(無形)’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위력적이다.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할 때 가장 두렵다. 범인은 보이는 ‘승지형’에만 관심을 갖지만 진정한 전략가는 보이지 않는 ‘제승지형’에 관심을 갖는다.

制勝之形 의 중요성 알았던 이순신
한산도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작전사령부인 제승당(制勝堂)이 있다. 제승당은 본래 운주당(運籌堂)이었는데 이순신 사후 142년 후인 영조 16년(1740년)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운 이래 제승당이라 이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한산도에 운주당을 지었다. 운주는 ‘운주유악지중(運籌<5E37>幄之中)’에서 나온 말로 군막 속에서 셈을 해 전략을 세운다는 뜻이다. 운주당에서 이순신 장군은 군관이나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작전을 논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음을 터놓고 마음껏 얘기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열었다. 이순신 장군은 운주당을 통해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특히 그는 운주당에서 여러 계책을 논의하면서 장차 적을 맞아 이길 방도를 짜냈다. 이순신 장군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제승지형’을 만들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았던 이순신 장군의 탁월함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회사 내에 제승당을 만들면 어떨까? 서로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소통의 장으로, 그리고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을 짜내는 비밀장소로 말이다. 과정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등산을 생각해보자. 그저 정상만을 정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힘들게 올라갈 필요가 없다. 돈을 좀 들이더라도 헬리콥터로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정상에 올라가면 그만이다. 등산만큼 과정이 중요한 것도 없다. 산기슭에서부터 땀을 흘리며 차근차근 올라가는 그 과정이 힘들게 등산하는 이유다.

결과를 얻기 위해 정직하게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만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비윤리적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이 많다. 꼼수를 쓰고, 동료들을 짓밟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비위를 맞춘다. 비록 원하는 결과는 얻을지 모르지만 그 삶의 가치는 결코 높이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이 때문에 결과에만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분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나 과정 어느 하나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자. 결과가 중요할 수 있지만 그 과정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유용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좋은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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