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형부동산 대세, 일본식 서브리스 업체 늘어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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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22면

일러스트=강일구

주택경기의 침체는 두 가지 구조적 원인 때문에 불가피하다. 인구구조와 주거선호 구조가 그것이다. 1인·2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가족보다는 단신 가구의 임대주택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집값 상승 기대감이 떨어지자 주택매매가 거의 마비됐다. 지난 10일 정부의 주택거래 정상화 대책에 대한 시장 반응도 신통치 않다. 내집 마련이 관망세로 돌자 임대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월세 가격이 뛰었다.

이상영 교수의 부동산114

더욱이 고령화 추세에 노후생활 자금 마련 수단으로 월세 수익형부동산 투자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집 장만 하면 아파트였던 것이 단독주택 쪽으로 일부 옮겨가고 있다. 아파트 값이 뛸 가능성이 낮다면 수익형부동산 재개발이 용이한 단독주택이 낫다는 인식이 번지는 것이다. 주택을 보는 관점이 선진국처럼 소유에서 거주 개념으로 변화 중인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가 기존 트렌드와 마찰을 빚으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첫째, 전세 물건은 부족하고, 월세 물건은 남아도는 수급 불일치가 심하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월세보다 부담이 덜한 전세를 선호하고 집 주인은 그 반대다. 이 결과 공급이 달리는 전셋 값 강세가 이어지고 월세는 물건이 남아돈다.

둘째, 지역 선호가 바뀌면서 지역별 수급이나 가격 면에서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소득이 정체되고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대도시의 경우 출퇴근 거리를 줄이기 위해 도심 임대 수요가 늘고 있다. 특히 베이비 붐 세대(1955~63년생)의 2세들이 주택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은 환경과 자원 문제를 중시하는 ‘에코(Eco) 세대’라 직장과 가까운 도심 내 임대주택을 먼저 찾는다. 직주(職住) 근접 관심이 커지면서 교외나 수도권 외곽에 내집을 마련하려는 욕구는 크게 줄고 있다.

셋째는 초(超)소형 임대주택에 투자가 몰리면서 투자부실 리스크가 커졌다. 지난 한 해 전국적으로 도시형 생활주택만 8만4000가구가 인허가됐다. 일부 도심 내 도시형 생활주택은 오피스텔보다 평당 분양가가 높았다. 30㎡ 이하로 워낙 주택 규모가 작아 높은 평당 분양가를 간과하기 쉽다. 현재와 같은 과잉투자는 임대료를 높여 임차인 유치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

넷째는 임대주택의 품질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건축관리부터 어려운 데다 아파트에 비해 장기적인 유지 관리 준비가 충분치 않아 건물이 노후화하면 안전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임대주택 투자자들은 초기 임차인 모집에 몰두하지만 이를 운영하면서는 월세를 제대로 받고 건물을 유지 관리해 나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기 일쑤다. 그래서 유지 관리비를 투자예산의 일부로 쳐야 한다.

주택 임대시장이 정착된 선진국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해결해 왔을까. 우리가 겪는 작금의 주택시장 변화를 20년 전부터 경험한 일본을 보자.

우선 일본엔 전세제도가 없었지만, 집주인에게 답례의 뜻으로 지불하는 사례금이라는 추가적 부담이 존재한다. 이는 2000년 정기차가법이 도입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꽤 많은 임대주택에서 이러한 사례금이라는 추가 부담을 요구하지 않게 됐다. 공공주택에서는 당연히 이런 요구가 없다. 민간의 경우도 ‘먼슬리 렌트(Monthly rent)’라는 형태의 사례금 없는 월세가 늘고 있다. 현대적 월세시스템이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지역선호 변화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진행돼 도쿄 외곽 신도시에서 도심으로 인구가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신도시는 노후화·공동화하고 있다. 거주민의 고령화도 급속히 진전됐다. 반면 도심에는 임대주택이 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한 주택 투자가 일반화되었다. 도쿄권 신규 주택의 절반 정도에 일본 리츠(REITs·부동산 투자신탁)의 투자가 들어왔다. 주요 리츠의 임대주택 중 90%가 도쿄 도심에 있다.

셋째, 개인 임대주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대형 임대주택관리회사들이 존재한다. 70만 가구 이상을 관리하는 초대형 업체도 있다. 또한 개별적 임대주택관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임대인에게 고정 수익을 보장하는 서브 리스(sub-lease)도 널리 확산됐다. 이 사업은 임대인에게 고정임대료를 30년간 지불하기로 하고 주택을 빌려 세입자를 끌어들여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2000년대 이후 일본에서 각광받았다. 동시에 이들 서브리스 회사는 관리 위탁기간 동안 유지보수와 관련된 문제도 동시에 처리해 준다.

넷째, 변화된 주택임대 시장 여건에 맞게 임대주택 관련법들을 개정했다. 2000년 이후 이를 통해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을 줄일 수 있었다. 정기차가법을 제정하고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제도, 임대주택관리회사 등록제 등을 신설한 것이 그 예다.

물론 일본이 완벽한 모델은 아니다. 여전히 관습적인 사례금 제도가 남아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임차 거부 풍조도 심각하다. 또한 서브리스 사업 등으로 투자자 수익을 철저하게 보장하다보니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불황이 급습하면 공실이 급증하면서 임대관리회사들이 부실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막 민간 임대주택시장이 싹트는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전세에서 월세 위주로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주거비 부담 증가, 전세 물건의 부족 심화, 월세주택의 과잉투자·관리부실, 서민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거안정 보장 문제, 법률·세제 정비 등 한두 가지 과제가 아니다. 투자자들은 서둘지 말고 제도 변화나 시장 동향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민간 임대주택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복잡하게 나뉜 주택 유형들을 재분류하고, 조세·금융 지원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이상영(50) 서울대 경제학 박사로 한국개발연구원(KDI)·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부동산114를 설립해 경영하기도 했다. 『내일의 부동산파워』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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