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5·24 대북제재’ 실행 2년을 돌아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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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천안함 폭침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취한 ‘5·24 대북제재’가 내일로 2년이 된다. 이 조치를 계기로 남북관계는 한순간에 이전과 180도 바뀌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그 이전과 차원을 달리했다. ‘퍼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에는 한 해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인적 교류가 이뤄졌고 개성공단과 같은 장기적 남북합작 프로젝트가 정착했다. 이를 통해 남북 간에는 교류협력 증진을 통한 화해협력 정책이 뿌리내리는 듯했고 통일 전망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온정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데 거의 모든 대북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과거 정부의 교류 확대 정책은 어느 정도 관성을 유지했다. 그런 와중에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을 계기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천안함 사건과 ‘5·24조치’로 남북관계는 ‘천당에서 지옥으로’ 급락했다.

 북한 영·유아 지원을 제외한 모든 인도적 지원이 중단됐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경제교류도 중단됐다. 남북한 간 인적 왕래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사회문화교류는 전면 차단됐다.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통행금지와 대북 심리전 재개 등의 조치도 포함됐다. 당시 정부로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한꺼번에 취한 것이다. 당시 국민감정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5·24조치를 취하면서 남북관계의 장기적 비전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은 문제다. 예컨대 당시 발표된 대북 심리전 가운데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북한의 반발과 위협에 부닥쳐 좌절됐다. 애초부터 북한과 열전(熱戰)을 벌일 의지가 없다면 실행이 불가능한, 즉흥적 대처였다.

 대북 경제교류의 전면 중단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2010년 19억1224만 달러였던 남북교역규모는 지난해 17억1386만 달러로 줄었다. 이를 대신한 것이 북·중 간의 교역이다. 같은 기간 34억6568만 달러에서 56억2919만 달러로 폭증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의도했던 경제제재 효과는 1년도 안 돼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 사이 남북관계가 한 극단에서 반대편 극단으로 오가는 것을 경험했다. 지나치게 온정적인 대북정책은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분열과 낭비를 초래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정책 역시 부작용이 크다. 어느 쪽이든 지나치게 단선적(單線的)인 정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는 요인이다. 더 큰 문제는 장기적으로 통일 전망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한 비전 제시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북한 붕괴 가능성을 말하며 대북제재 강화가 통일 정책이라고 강변한다. 붕괴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붕괴를 통한 통일’을 비전으로 삼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반세기 이상 반목해온 남북관계를 정상화해 ‘번영하는 통일 국가’의 비전을 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순(矛盾) 같지만 “일관되면서도 유연한” 대북정책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