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낯뜨거운 SW 불법 복제 수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우리나라에서도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사례가 나와야 한다.”

 2010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회의 주제는 ‘소프트웨어(SW) 강국 도약을 위한 전략’. 이 대통령은 “SW 개발자가 충분히 보상받고 개발 결과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기업은 물론 사용자 모두의 관심과 협조,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2년여. 우리 사회는 SW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얼마나 ‘관심과 협조를 기울이고 노력’했을까. 지난주 국제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은 뜨끔한 수치 하나를 발표했다. 한국의 SW 불법복제율이 40%라는 내용이었다. 세계 평균 42%보다는 조금 낮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평균(26%)에 비하면 낯뜨거운 수치다.

 BSA가 이 조사를 처음 실시한 2000년 56%를 넘던 국내 SW 불법복제율은 그동안 조금씩 하락해 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한 그해 하락세가 멈췄다. 수치는 2년째 요지부동이다.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르지 않은 탓이다. 이런 가운데 불법복제로 인한 피해액은 지난해 8900억원대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불법복제는 10여 년 전보다 많이 줄었으나 SW 시장 전체가 커지는 바람에 피해액이 늘어난 것이다.

 불법 복제는 이용자의 양심뿐 아니라 정보기술(IT) 산업 경쟁력을 좀먹는다. ‘소프트웨어는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중소 벤처들이 SW에 뛰어들기를 꺼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지식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SW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8%에 불과하다. 반도체·LCD·초고속인터넷처럼 세계를 선도하는 하드웨어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OECD 19개국을 상대로 조사한 SW 경쟁력에서도 한국은 14위에 그쳤다. 글로벌 100대 SW 기업에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말뿐이 아닌 정책이 뒷받침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도 SW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SW에 미래를 거는 젊은이가 많아진다.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바로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