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바라보는 외국 언론의 시선

중앙일보

입력

최근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임권택의 '춘향전',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장선우의 '거짓말'이 미국에서 개봉하면서 한국 영화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고, 신문과 잡지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비평을 가끔 읽을 수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 영화를 어떻게 볼까? 외국 언론의 반응에 민감해 할 필요는 없겠지만 잠시 그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듯 싶다. 얼마전 LA 타임즈와 '시카고 리더'에 실린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대한 영화평을 읽은 적이 있다. 평가가 사뭇 엇갈리고 있었다.

미국 언론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복합적인 영화로 분류한다. 이 영화는 '더티 하리'나 오우삼(혹은 타란티노)의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무성영화, 애니메이션, 아방가르드 영화, 뮤직 비디오를 다양하게 횡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명세의 만화적인 상상력(특히 잠복 근무중 우형사가 떠올리는 설렁탕을 만화처럼 보여주는 장면에서)에서 장 콕토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한다.

시각적인 스타일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폭력보다는 그것을 담아내는 주제 의식과 구조, 시각적 스타일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평론가들은 이명세의 영화가 오우삼이나 타란티노의 액션 영화보다 훨씬 감성이 풍부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화려한 시각적 스타일과 우형사의 폭력성이 대비시키면서 우형사의 무자비한 폭력을 점점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환경과 만나게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액션 영화에 대한 비평이며, 액션에 목말라 하는 우리 자신의 갈망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우형사의 처량한 삶은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에 의해서만 구제될 뿐이다.

반면 '시카고 리더'는 이 영화가 묘사하는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도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비판을 제기한다. 주로 뉴욕에서 이 영화에 가장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 비평가들은 '아프리카-아메리칸' 계열의 집단이다. 아마도 이 영화가 그리는 경찰의 폭력성에 대한 옹호(?)가 자칫 위험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듯 하다.

이런 입장은 우형사가 폭력의 희생자가 아니라 액션의 아이콘이기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무자비한 폭력을 변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버스터 키튼의 익살 광대극과 로드니 킹 비디오의 갭을 연결한 최초의 영화라는 비판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긍정적인 평가 못지 않게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우리가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제기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다수 비평가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묘사하는 경찰의 삶을 대단히 '사실적인 것'으로 평가했고, 관객들 또한 이 영화의 폭력 장면을 도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외국에 소개되는 일이 많아질수록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또한 많아지고 있다. 앞서 말했지만 지나치게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외부의 시선에 대해 온당하게 평가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시선 또한 풍부해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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