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결정이라며 이석기 찍으라 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현대차 전주공장 노조원들이 16일 게시판에 붙인 통진당 부정 경선 규탄 성명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3월 14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온라인 투표에서 당권파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다니면서 이석기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줄 것을 요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투표에 참여했던 통합진보당 당적의 공장 노동조합원들에 의해서다.

조합원 22명은 성명을 통해 “현대차 출신 노동자 후보(이영희 전 민주노총 정치위원장)가 출마했고 그런 후보가 전주공장에 인사를 하고 돌아다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업가 출신 이석기 후보를 ‘자주노동자회’ 조직에서 지지한다고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300여 명의 당원들을 찾아 다니면서 투표를 시켰다”고 밝혔다. ‘자주노동자회’란 당권파와 가까운 조직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통합진보당의 한 진상조사위원은“노트북을 들고 와 이 후보를 위해 온라인 투표를 하게 한 것은 비밀투표 원칙을 훼손하고 이동투표소를 차린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조준호 전 공동대표는 지난 2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노동현장 등에서) 동일한 IP(인터넷 주소)에서 집단적인 투표가 이뤄졌다”고 했었다. 당권파 측이 이런 방식으로 투표 독려를 하면서 하나의 IP에서 집단투표가 발생한 셈이다. 배 조합원 등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과정의 불법적이고 패권적인 방법이 드러난 만큼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성명서를 16일 사내 게시판에 붙여 놓았다.

 이들 조합원은 온라인 투표뿐만 아니라 현장투표에선 당에서 파견된 투표관리인이 투표소를 찾은 당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이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성명을 발표한 22명 중 한 관계자는 “현대차 노조 출신인 이영희 전 위원장이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지만 (이런 부정 탓에) 전주공장에서도 이석기 당선인보다 턱없이 적은 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전북지역 현장투표에서 206표를 얻어 30표에 그친 이 전 위원장을 7배 가까이 앞섰고, 온라인 투표에서도 1만183표를 얻어 이 전 위원장(2097표)을 크게 눌렀다.

김 조합원은 “당시 자주노동자회 측에 ‘당신들은 이석기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일반 당원뿐 아니라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문성현 전 대표도 이날 “이석기 당선인의 존재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2006년부터 2007년 말까지 2년 가까이 당 대표를 맡았지만 이석기 당선인은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며 “민노당이 선거 기획을 많이 맡겼던 CNP전략그룹이라는 회사는 알았지만 회사 대표가 이석기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당선인의 언행에 대해서도 “정치적 언사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종북보다 종미가 더 문제다’ ‘부실과 부정은 10% 반영된 현장투표에서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은 사퇴하기 싫어서 이것저것 갖다 대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렇게 사퇴하기 싫으면 차라리 국민에게 잘못했다고, 잘하겠다고 용서를 구하는 게 깨끗하고 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이 당선인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당권파가 결사적으로 나선 이유는 그가 노출되지 않은 당권파의 실세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명을 통해 온라인 투표 부정을 폭로한 현대차 조합원들은 이날 이 당선인에게 문자를 보내 “ ‘부정이 없었다, 떳떳하다’고 말하는 걸 보고 분을 참지 못하겠다.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비례대표 당선인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당선인은 그러나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양원보·김경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