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유로존 깨지면 성장률 전망 의미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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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국채 투자자들 항의 시위 18일 그리스 아테네의 재무부 건물 앞에서 그리스 국채 투자자들이 국채 교환(debt swap) 조치에 항의해 시위를 하고 있다. 재무부가 최근 발동한 ‘국채 교환 집단행동 조항’에 따라 이들이 보유한 국채는 액면가가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최고 30년 만기 국채로 교환된다. [로이터=뉴시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3.6%로 낮췄다. 지난해 11월에 이어 두 번째 하향 조정이다.

KDI는 지난해 5월 올해 성장률을 4.3%로 전망했고, 지난해 11월 이를 3.8%로 낮췄다. 이번 전망치는 지난해 성장률과 같다. 당초 기대와 달리 올해 경제가 지난해보다 나아질 게 없다는 뜻이다.

 성장률 전망 하향은 해외 여건이 생각만큼 좋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인 수출은 지난해보다 7% 느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증가율은 19.7%였다. 경상수지 흑자도 지난해 265억 달러에서 올해 183억 달러, 내년 122억 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문제는 더 나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KDI는 유럽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3% 이하 성장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한규 KDI 연구위원은 “유로존이 깨진다면 지금의 성장률 전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란 제재 등 중동 불안과 이에 따른 유가 상승 가능성도 부담이다.

 그나마 버팀목은 상대적으로 나은 국내 상황이다. 민간 소비(2.7%)와 투자(8.1%)가 모두 지난해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점, 물가 상승세가 꺾였다는 점이 위안이다. KDI가 상반기보다 하반기 경제가 좋은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을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년 성장률은 4.1%로 전망했다.

 그러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가계빚 증가세는 주춤해졌지만 연체율(3월 말 0.84%)은 높아지는 추세다.

건설 투자 증가율 전망(3.1%)은 설비투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KDI는 “부실 저축은행 문제로 인한 금융 불안이 지속되면 가계부채 문제와 맞물려 내수를 제약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국 성장률 전망은 KDI가 하향 조정한 수치보다 더 낮은 3.5%다.

 기획재정부의 계산도 복잡해지고 있다. 당장 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은 없다. 재정지출의 총량은 늘리지 않되, 가능한 한 조기 집행을 해서 ‘상저’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 상황에 대한 대응 수위는 높였다. 금융시장 급변에 대한 대응 강화, 유럽 위기에 따른 비상 계획 재정비 등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단 한 달 정도를 더 지켜보면서 정부의 성장률 전망 수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뒤집으면, 앞으로 한 달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는 3.7% 성장을 전제로 올해 경제 정책을 짰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정부가 낼 수 있는 카드는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밖에 없다. KDI도 “대외 여건이 급속히 나빠질 경우 정책 여력이 상대적으로 큰 재정을 중심으로 경기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아쉬운 건 때를 놓치는 바람에 금리를 손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재준 KDI 경제전망팀장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운신의 폭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Korea Development Institute)

정부의 대표적 싱크탱크다. KDI의 경제전망은 정부가 거시경제 정책을 펴는 데 중요한 판단 자료로 활용된다. 1971년 설립돼 박정희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00년 1월엔 대규모 공공투자 사업의 사전·사후 평가를 총괄하는 ‘공공투자관리센터’를 설치했다. 주요 정부 정책에 대한 분석과 전망,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대한 타당성 조사, 중장기 국가 과제에 대한 연구 등을 하고 있다. 매년 40∼50여 종의 각종 보고서를 간행하고 있는데, 정기간행물로 연구내용을 집약해 정리하는 ‘한국개발연구’와 국내외 경제동향 및 전망을 분석하는 ‘KDI 분기별경제전망’을 계간으로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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