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e-road로 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장터(bazaar)라는 사이버 신세계에선 이미 전자적(electronic) 삶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징후를 감지하면서도 쉽게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관성 탓일 것이다.

현기증 나는 사이버 공간의 확장, 우리의 안방 깊숙이 침투한 그 낯선 것과의 화해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정보기술(IT) 컨설턴트로서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로빈 블루어는 신간『일렉트로닉 바자』를 통해 "인터넷이 나에겐 영향을 주지 않을 것" 이라는 나른한 환상을 어서 깨라고 경고하며 그 낯섦과의 화해를 유도한다.

최근 닷컴 벤처기업들의 뒤뚱거리는 모습에 어떤 이들은 조소를 보낸다. 하지만 그 뒤뚱거림이 일시적 현상일 수 있음을, 그래서 그 조소가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에서 가상공간의 폐해와 같은 인문적 성찰을 기대해선 안된다.

변화하는 현실을 확인하고 예정된 미래의 수순을 예측하는 것, 그래서 비상과 역전을 꿈꾸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e-비즈니스의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억 단위의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기존의 매체에 인터넷 광고와 ID, URL이 홍수를 이루는 현실에서, '구더기가 안생긴다는 보장이 있어야 장을 담그겠다' 는 유보적 자세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과 개인의 쇠망의 역사에 한 줄을 보탤 뿐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실제로 블루어 리서치(Bloor Research)라는 컨설팅업체를 창업하고, IT-Director.com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6개월 만에 수익을 내기도 했다. 이 책을 위한 보충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TheElectronicBazaar.com이라는 사이트도 개설해 놓았다.

언뜻 보면 진부한 인터넷 안내서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책이 기존서와 다른 점은 현장의 체험과 사례중심의 자료들이 생생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인터넷은 과대평가돼 있다" "우리는 제조업체이므로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등의 부정적 안목을 씻어내도록 요구한다.

저자가 볼 때 기존의 사업 거래는 모두 웹으로 갈 것이다. 21세기 경영의 최대 이슈는 전자 상거래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보안 등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고, 전자화폐가 본격 사용될 때 현실화할 것이다.

과거에 유라시아 문명권에서 국제적 교역루트였던 실크로드가 했던 것보다 더 포괄적인 역할과 변화를 몰고올 것이다. 인터넷 시장이야말로 21세기의 실크로드다.

인터넷 시장과 기업의 성장모델을 기존의 종 모양의 곡선(bell curve)으로 예단해선 안된다.
인터넷 기업의 성장곡선은 '하키 스틱 커브(hockey stick curve)' 다.

일단 아이스하키나 필드하키의 스틱 같은 성장곡선 밑부분의 구부러진 변곡점을 지나면 그 사업은 로켓처럼 치솟으면서 전례없는 성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예는 인터넷 기업 아마존(Amazon)이나 이베이(eBay)의 성장과정에서 볼 수 있다.

21세기의 산업혁명은 공장이 아닌 시장에서 일어난다. 사고 파는 패턴의 변화인 유통혁명이 그 주인공이다. 인터넷은 상품의 조달과 판매 등 마케팅의 전영역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사이버 공간은 상품 거래의 비용을 낮춘다.

불필요해진 중개인력 등 많은 일자리의 소멸을 초래하는 동시에 새로운 중개시장을 창출한다.

온라인 경매시장의 활성화는 주목할 만한 요소 중 하나다. 경매는 오프라인에서의 제한적 영역을 넘어 일반적 유통방식이 될 것이다.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정보를 효율적으로 흐르게 하며,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동시에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경매의 대중화는 기존에 없던 중고 제품들의 거래시장을 새로 광범위하게 형성시킬 것이다.

인터넷 기업의 성공은 또 얼마나 여흥과 재미를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컨대 경매도 재미있기 때문에 인기를 끄는 것이다.

인터넷 소매는 재미를 통해 구매 경험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정보시대의 뒤를 이어 여흥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견하는 대목이다.

기술의 발전이 경제적 변화를 거쳐 사회와 정치의 변화를 추동해 왔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고 또 그 공기(工期)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예정된 전자 유통 고속도로(e-road), 그 길을 질주할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e-road의 장밋빛 이정표를 바라보며 막연한 두려움의 장막을 걷어낼 미래의 독자들에게 저자는 불길한 예언 한 마디를 잊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을 좋아할 수도 있고, 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당신은 이 책을 읽기만 하고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뜨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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