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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는 깨질 수 있는 화폐, 이걸 보여 준 게 그리스 사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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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20면

리스본 카운슬의 알레산드로 레이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18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유럽 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수십 년간 ‘하나의 유럽’에 대한 열정을 불태워온 유럽연합(EU)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 국가부도 위기에 놓인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이탈 가능성에 세계 금융시장이 휘청대고 있다. 이른바 ‘그렉시트(Grexit:Greece+exit)’ 악재다. 그리스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유로존 이탈, 긴축안 수용, 긴축안 재협상과 같은 서너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다음 달 17일로 예정된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 반대’를 외치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어느 정도 의석을 확보하느냐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세계경제연구원 주최로 18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금융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알레산드로 레이폴드를 만나 그리스 사태 전망을 들어봤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경제·사회문제 싱크탱크인 ‘리스본 카운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국장 대행을 역임한 유럽문제 전문가다. 다음은 일문일답.

리스본 카운슬의 알레산드로 레이폴드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현 상황이 변치 않는다면 이탈을 피하기 어렵다. ‘유로존에 남고 싶지만 긴축을 강요하는 구제금융안이 바뀌어야 한다’는 그리스와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길 원하지만 구제금융안을 바꿀 수 없다’는 EU가 맞서고 있다. 그리스의 총선은 다음 달 17일로 한 달 남았다. 총선 결과를 봐야겠지만 그리스의 이탈 가능성이 커졌다.” (※EU는 올 초 1300억 유로(약 194조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그리스에 최저임금과 연금 삭감, 공무원 감축 등의 긴축안을 요구했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은.
“유로존 이탈과 디폴트는 함께 간다. 그리스가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진다. 다음 달 총선에서 긴축 반대를 외치는 급진좌파연합이 더 많은 표를 얻으면 ‘돈을 안 갚겠다’고 버틸 수도 있다. 디폴트보다 더 큰 문제는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다.”

-유럽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느 누구도 그리스의 이탈을 원치 않는다. 그리스와 EU는 지금 구제금융안을 두고 팽팽히 맞서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지도자들이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유럽투자은행(EIB)을 통한 지원 같은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 사태가 유로존 붕괴의 서막이라는 시각도 있다.
“EU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재정적으로도 더 통합돼야 한다. 만일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난다면 ‘유로화는 깨질 수 있는 화폐’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유로화는 태생적으로 인위성 강한 독특한 화폐다. 화폐가치의 강세·약세 여부를 떠나 존속하느냐, 사라지느냐가 관건이다. 그리스 사태는 유로화의 그런 특성을 보여준다.”

-그리스 위기가 다른 나라로 번질 것 같나.
“나라마다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스페인은 금융에 문제가 있지만 그리스보다 각종 자원이 풍부하다. 이탈리아는 마리오 몬티 총리가 개혁과 변화를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할 일이 많긴 하다.”

-유럽 재정위기를 극복할 자금 사정은.
“충분하지 않다. 유로존의 위기를 막기 위해 5000억 유로(약 740조원)를 조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5000억 유로라는 게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아니다. 단계적으로 조성하는 것으로 2014년에야 5000억 유로가 된다. 당장 쓸 수 있는 것은 2300억 유로 정도인데 (현재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갈 것인가.
“앞으로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가정할 경우, 퇴출(orderly exit)이 질서 있게 진행된다면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질서 있는 퇴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여파가 심각하다. 유럽은 쉽게 회복하기 어려울 테고 미국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아시아는 2008년 금융위기 때 회복속도가 빨랐지만 면역성을 완전하게 갖춘 건 아니다.”

-‘질서 있는 퇴출’이 가능한가.
“이론적으론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이해당사자 간 긴밀한 협조와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을 것이다.”

-유럽 지도자 리더십에 문제는 없나.
“미 국무장관을 역임한 헨리 키신저를 인용하고 싶다. 키신저는 ‘유럽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고 싶은데,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게 문제다.”(※위기 속 유럽을 제대로 이끄는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뜻.)

-아시아 금융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는 유럽 재정위기를 교훈 삼아야 한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체제(CMIM)는 유럽 재정위기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가 탈퇴든 잔류든 어떤 결정을 내리면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는 시장 안정에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긴 해도 ‘탈퇴 결정’이 난다면 상당 기간 시장이 홍역을 치를 거다.”(※CMIM은 아시아판 IMF라 할 수 있는 역내 금융 안전망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원칙적인 조언 정도다. 유럽 시장이 어려워진 만큼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경기를 진작해 내수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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