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중국어 가르치며 ‘노력과 사랑 실천’ 산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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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사랑해요.” 세종고 2학년 2반 학생들이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담임 주원해(가운데) 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학교 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제자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스승이 절실하다. 이에 중앙일보 ‘강남 서초 송파&’은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선생님을 찾아 알리고자 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세종고 주원해(46) 교사다. 주 교사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가르치며 극복·노력·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주 교사는 중학생 시절 반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울여상에 입학원서를 내면서 결심했다. ‘남들보다 늦을 진 몰라도 반드시 대학에 간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은행에 취직했다. 하지만 학업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었다. 낮에는 은행에서 일하고, 퇴근 후엔 입시 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때 학원에서 처음으로 일본어를 접했다. 영어 외에 처음 배우는 외국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동양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본어를 전공하기로 했고, 하루 4시간만 자며 공부한 끝에 2년 뒤 세종대 일어일문학과에 합격했다.

등록금도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4년 동안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고, 닥치는 대로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어떤 일이 주어지든 ‘주원해’라는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 한 번 번역 일을 맡긴 교수들은 또 다시 그를 찾았다. “항상 제 자신을 ‘프로’라고 생각했어요. ‘학생이라서’ ‘바빠서’라는 핑계로 대충 하는 건 용납되지 않았죠.”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며 학업을 이어간 그는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1990년 대학 졸업 당시 사회는 여자보다는 남자를 선호했다. 더군다나 여자 수석 졸업생은 환영 받지 못했다. ‘결혼하면 그만 둘 거다’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길 지 모른다’는 선입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취업 준비 중에도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기업에 출강하기도 했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수강생이 늘어났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재미있었다. ‘교사가 적성에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고와 인연을 맺은건 1997년. 교사로 임용된 뒤 그는 1시간 강의를 위해 3시간 이상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재미있게 일본어를 가르칠까’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일본 의식주와 도구·문화에 관한 내용이 사진과 함께 담긴 일본문화원 자료집을 발견했다.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면 흥미를 끌 수 있겠다’ 싶었다. 일본문화원 측에 자료집을 요청하니 “1주일 동안만 대여해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 외무성에 ‘학교 수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마침내 자료집 5권을 받았다. 그 자료집은 15년여 흐른 지금도 유용하게 수업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박혜정(18·3학년)양은 “선생님 수업을 통해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주 교사의 수업을 들으며 “일본어를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한 박양은 지난해 일본어능력시험(JLPT) 2급에 합격했다.

주 교사는 ‘더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04년, 중국어 부전공 교사를 모집하는 서울시교육청 공고를 보게 됐다. 방학을 이용해 서울대에서 1000시간 동안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론 학생들 앞에 서기 어려웠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중국어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았다. 2005년 9월 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했고, 2007년 졸업과 함께 일본어와 중국어를 함께 가르치게 됐다. 그의 열정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도 통했다. 세종고 황영남(52) 교장은 “학교에서 주원해 교사의 인기가 대단하다”며 “성적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관심을 쏟기 때문에 학부모들도 존경하는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학년 말이면 학부모들이 교장실로 전화해 ‘다음해에 담임을 주 교사로 배정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주 교사의 좌우명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이다. “학생들에게 늘 얘기해요. 상황을 탓하지 말라고.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고 강조하죠.”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려는 학생들을 보면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들을 돕기 위해서 일본어 방과후 수업을 개설했다. “전교 1등과 꼴등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게 24시간이에요.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한 단계씩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겁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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