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과 함께 사라져간 헐리우드 명배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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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도래를 부르짖으며 그렇게 소리높여 환영했던 2000년 한해도 어느새 삼백육십 몇일의 수명은 어쩔 수 없는 듯 결국 숨져버렸다.

이렇게 덧없이 사라져간 2000년과 함께 한 때 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많은 헐리우드 명배우들도 세상을 떠나 팬들을 아쉽게 했다.

지난해 떨어져버린 스타들 중에는 우리에게 스타워즈 1편에서 오비원 케노비로 출연해 잘 알려진 알렉 기네스와 영화 'Arthur'로 유명한 존 길굿이 있다. 지난해 길굿과 기네스는 각각 95세와 85세의 나이로 숨졌지만 이들은 모두 최근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이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

1921년 헨리 5세 역을 시작으로 배우의 길을 시작한 길굿은 숨지기 직전까지 사뮤엘 베케트 원작의 'Catastrophie'를 각색한 영화에 출연하고 있었으며 기네스는 96년까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등 고령의 나이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이들은 또 수십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아주 늦게 스타덤에 오른 공통점도 갖고 있다.

기네스는 스타워즈의 오비원 케노비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날렸으며 길굿도 81년 작품인 'Arthur'에서 코믹한 캐릭터의 연기로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바 있다. 지난해 5월과 8월에 각각 숨진 길굿과 기네스를 보내며 헐리우드는 '올리비에 세대'의 마지막 대배우들을 잃어버렸다며 슬픔에 잠기기도 했다.

이전 세대의 수많은 남성들을 매료시켰던 로레타 영도 지난해 떨어진 별 중 하나다.

영은 나이 22살에 이름값 하듯 젊은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으나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유부남 클라크 게이블과 관계를 맺으며 임신, 배우 생명에 치명적인 위기를 맞게 된다. 지금의 분위기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30년대의 헐리우드는 혼외정사로 인한 아기의 출산은 배우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모양이다.

영은 당시 딸을 입양아라고 주장하며 위기를 모면했지만 죽은 뒤에 출판하기로 계약을 맺어 지난해 11월 출간된 자서전에서 이 아이를 자신의 친딸로 공식 인정하는 등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헐리우드 최초의 메가톤급 섹시 배우로 불리던 영은 출연했던 수많은 영화 중 43년작 'A Night to Remember'와 46년작 '이방인(The Stranger)', 47년작 '농부의 딸(The Farmer's daughter)'등에서 가장 빛나는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진 별 중 또 하나의 빅스타는 영화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로 출연한 헤디 라마르다. 오스트리아에서 헤드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라는 긴 이름으로 태어난 라마르는 샤론 스톤이 '원초적 본능'에서 보여준 다리를 번갈아 꼬는 '과격한' 연기와 비견되는 노출연기를 33년작 '엑스터시(Extacy)'에서 선보였다.

이 연기 하나로 단번에 영화팬들과 제작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라마르는 이후 MGM에 스카웃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헐리우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라마르였지만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해 헐리우드 캐스팅에서 점차 멀어지며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견디기 어려운 생활고 때문이었던지 라마르는 66년과 91년 두차례에 걸쳐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잡혀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41년작 'Ziegfeld Girl'과 'H. M. Pulham Esq.'에서 보여준 라마르의 명연기는 아직까지 헐리우드 여배우의 교과서다.

한편, 우리 영화팬들에게 '어니스트' 시리즈로 잘 알려진 짐 바니도 지난해 떨어진 별 중 하나다. 배꼽을 떨어지게 하는 코믹 연기로 유명한 바니는 그러나 두편의 '토이 스토리'에서 Slinky Dog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으며 개봉 예정인 빌리 밥 손튼의 'Daddy and Them'에서 드라마 연기를 선보이는 등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해 떨어진 헐리우드의 거성들은 '이상한 커플(The Odd Couple)','포춘 쿠키(The Fortune Cookie)' 등으로 유명한 코믹 배우 월터 매타우와 'Pickup on South Street(1953)'의 진 피터스,'Stagecoach(1939)'의 클레어 트레보어,'Comes a Horseman(1978)'의 리차드 판스워스,'The Prisoner of Zenda(1937)'의 더글라스 페어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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