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네 회사 회장이 걸렸대"고개숙인 A지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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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미래저축은행 제주 본점에 예금자들이 몰려들어 가지급금 신청을 하고 있다. 이 저축은행은 지난 6일 영업정지됐다. [뉴시스]
김찬경 회장

14일 서울시내의 한 미래저축은행에서 만난 A지점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18년간 이 은행에서 일했다고 했다. 중학생인 A씨의 아들이 “아빠네 회사 회장이 학력 위조했대. 밀항하다가 걸렸대”라고 할 때마다 A씨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배신감과 분노가 겹쳐 수일간 잠을 설쳤다. 밥 대신 병원에서 처방해 준 신경안정제를 먹고 일했다.

 다른 지점 직원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퇴직금이 가장 큰 문제였다. 미래저축은행 전 직원은 지난해 9월 영업정지 유예를 받은 직후 기존에 가입한 퇴직연금을 미리 정산해 유상증자에 보탰다.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넣었다. 대출을 받아 증자에 보탠 직원도 있다.

A지점장은 "‘당신 실업자 되면 퇴직금 가지고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살자’며 위로하던 부인에게 차마 퇴직금이 없다는 말을 못하겠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말 결혼을 앞둔 한 여직원은 “결혼자금으로 쓰려던 퇴직금이 한 푼도 안 남았다고 생각하면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김찬경 회장이 궁평항에서 밀항하다가 체포됐다는 뉴스를 접하고서야 직원들은 “속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있던 전 직원 스피커폰 회의가 최근 몇 달 동안 없었던 것도, 직원들과 스킨십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회장이 부쩍 안 보이던 것도 그제야 이해가 됐다.

미래저축은행의 B지점장은 “김 회장이 지점장들에게 ‘영업정지는 없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말한 게 5월 3일(김 회장 밀항 시도일)이었다”며 “영업정지 발표일(5월 6일) 하루 전까지도 직원들을 격려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장 측근이 회사로 찾아오면 회장이 비서실에 ‘500만 가져오라’고 지시하곤 했다고 들었다”며 “회장이 우리에겐 피 같은 돈을 제 마음대로 썼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올해 초에도 임원들을 통해 각 지점에 수십억원의 부실대출을 강요했다고 한다. 서울의 C지점장은 “3월 초에 김 회장이 임원들을 통해 한 업체에 60억원을 대출하라고 지시했지만 임원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말했다. 다른 지점장은 “올해 초 김 회장이 유흥숙박업체 사람을 보낼 테니 50억원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며 “양호한 업체라고 했는데 살펴보니 부실업체라서 대출을 미뤘다”고 털어놨다.

 미래저축은행의 직원들은 회사가 하루빨리 인수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직원 D씨는 “회사가 인수돼도 우린 결국 계약직 신세가 될 테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면 빨리 정리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얘기했다.

미래저축은행 직원들은 현재 김 회장의 자금 횡령과 밀항을 도운 혐의로 구속된 문모 경영기획본부장을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직원들은 “문 본부장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회장만 믿고 회사를 살리려다가 이용당한 것”이라며 “변호사 선임비용도 없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채윤경·이유정 기자

미래저축은행 직원들 분노의 말말말

▶ A지점장 “직원들의 퇴직금까지 가져가 증자 자금으로 쓴다더니 그 돈을 들고 튀었다”
▶ B지점장 “회장 측근이 회사로 찾아오면 회장이 비서실에 ‘500만 가져오라’고 지시하곤 했단다. 우리에겐 피 같은 돈을 마음대로 썼다는 것”
▶ C지점장 “뼛속까지 사기꾼이다 … 대통령 수준으로 모셔왔는데 후회스럽다”
▶ D지점장 “회장이 사람을 보낼 테니 50억원을 준비하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대출 압력이었다”
▶ E지점장 “직원들더러 자기 아버지 밤 농장에서 밤 따라고 시키던 사람이다”
▶ F지점 직원 “우리는 (회장에게) 완전히 속았다. 지금 전 직원이 배신감 때문에 이를 악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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