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이야기인 사람 무책임한 허구 세계가 속 편하다는 사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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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11면

나로부터 가까운 건 쓰고 싶지 않다
-『길의 노래』는 지금까지 소설에 비해 아주 평이한 제목이네요.
“어느 순간 가장 평범한 게 좋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길의 노래’는 오래된 제목이잖아요. 샤티야지트 레이라는 인도 감독의 영화 중에 ‘길의 노래’가 있어요.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도 있고, ‘칼의 노래’도 있잖아요. 전혀 특별하지 않죠. 소설을 설명해 주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1세기 최고 문제작『고래』의 작가 천명관

-작가 레터에 ‘아무런 준비 없이 길거리에 깡통 하나만 던져놓고 시작하는 마음으로 책상 앞에 엎드렸습니다’라고 썼던데요. 연재 중 내용 수정도 있고요.
“인터넷 연재라는 게 대개는 미리 써 놓죠. 분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급히 들어갔고, 그게 재밌더라고요. 당일치기로 쓰는 게. 많이 준비하면 생각할 시간도 있고 좋겠지만, 모르겠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심지어는 원래 다른 소설을 쓰려고 결정하고, 제목도 다르고 이야기도 달랐는데 갑자기 나흘 전에 바뀐 거예요.”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삽화. 일러스트 이강훈, 예담 제공

-갑자기 앵벌이 얘기를 쓰고 싶어져서?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나요?
“이 얘기는 오래됐어요. 제가 쓰는 얘기는 다 10년 이상 된 거예요. 『고래』도 그렇고, 다 30대 때 생각했던 이야기들이죠. 근데 그때는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안 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은 안 나더라고요.”

-그럼 원래 쓰려다 만 건 영영 못 보게 될까요.
“원래 처음으로 연애소설 한번 써보려고 했어요. 연애소설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는 글이잖아요. 연기자가 인물에 몰입하듯 글쓰는 사람도 감정에 몰입이 돼야 하는데, 전혀 안 돼. 한 줄도 못 쓰겠더라고요. 괜히 혼자 손가락 오그라들다가 ‘에이, 웬 연애소설이냐’. 근데 이 작품에 미친 영향은 있어요. 잔잔해졌어요. 서정성도 있고 느리고.”

주 5일씩, 두 달여 연재한 그의 새 이야기는 반 권 분량만큼 쌓였다. “전혀 다른 스타일로 써 보고 싶었다”는 그의 말대로 이야기는 느리고 잔잔하다. 파란만장 좌충우돌 인생 이야기로 독자를 매료시켰던 그는 “원래 잘 안 썼던 소년의 심리 같은 내면적인 것”을 쓰고 있단다. “전 같았으면 벌써 팔다리 몇 개 잘랐을 텐데”라고 농을 던지면서 “뒤에는 커지니까 앞에서 (내면적인 걸) 탄탄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새 소설도 결국엔 ‘천명관다운’ 것이 될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첫 구상이 이랬단다.
“빅토리아 시대 런던을 배경으로 하려고 했어요. 찰스 디킨스 풍의 느낌. 거기는 훨씬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세계거든요.”

-천 작가를 가리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계 출신이 분명하다’고 쓴 기자가 있던데. ‘유럽에서 일어난 유럽인의 대소사를 적어놓고 한국 소설이라 우긴다’면서요(그의 소설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는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프랑스 혁명사’가 실려 있다).
“정말 많이 뻗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 안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그때만 해도 굳이 한국을 무대로 쓰고 싶진 않았어요. 저로부터 가까운 걸 쓰고 싶지 않았어요. 멀리, 아주 멀리 있는 것. 지금 여기가 아니라 그때 거기. 그래야 내가 좀 더 자유롭고 무책임해질 수 있잖아요. 지금 여기에 있으면 좀 부담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전쟁의 앵벌이는 매우 한국적인 설정으로 보이는데요.
“당시에는 한국이 아주 열악했고, 완전한 변방이었잖아요. 제3세계적인 그로테스크함이 있어요. 그래서 더 이상한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일제시대의 잔영도 남아 있고, 전쟁은 끝났고. 한국이라는 강박만 없으면, 내가 멀리서 한국이라는 사회를 볼 수 있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이런 점 때문에 남미 작가들이 세계문학을 장악한 거죠. 제 3 세계적인 새로운 것, 모순과 갈등이 더 격렬하고 근원적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도 그런 거잖아요.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나라가 얼마나 되겠어요.”

-지금 여기의 이야기는 안 쓰나요.
“단편으로 써요. 왜냐하면 지금 여기는 너무 가까워서 보이지 않아요. 어느 한 측면을 스케치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장편은 전체가 보여야 하거든요. 그만큼 멀어야 해요. 저는 그게 최소한 30년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70년대였고, 지금 『길의 노래』는 50년대잖아요. 그 정도 거리가 생겨야 해요. 안 그러면 자꾸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겪은 연애 얘기 나오고 그럴 수밖에 없어요.”
'난생 처음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가서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 오후의 햇살은 따뜻했고 담배 연기가 떠다니는 카페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작가의 말’엔 이렇게 써 있다.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곳이 바로 그 카페였다. 의외로 백화점과 지하철역을 코앞에 둔 상업지구 한복판이었다. 흡연실로 자리를 옮겨 담배부터 꺼내 문 그에게 “작가는 한적한 곳에서 글을 쓰는 줄 알았다”고 던졌다.
“저는 후배나 다른 작가들에게 제발 산에 들어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산에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잖아요. 그럼 쓸 게 뭐 있겠어요. 그냥 즐기면 되지. 뭐 이런 걸 써오겠죠. 자연의 고마움과 배려, 용서 같은 것들.”

-배려·용서가 담긴 글은 아니어도 다른 글은 안 쓰나요. 소설 말고 천 작가의 다른 글을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허구 이외의 글은 안 쓴다, 이게 원칙이거든요. 그래서 그때 중단한 거예요. 이후 특별한 이유 때문에 한 번은 영화평을, 한 번은 박경리 선생 돌아가셨을 때 추모글을 썼는데, 그러고는 안 썼어요.”
‘그때 중단한 거’라는 건 2007년 중앙SUNDAY에 연재했던 ‘소설가 천명관의 시네마 노트’라는 에세이다. 하지만 6회 만에 연재를 중단했다.

-허구만 쓰는 이유가 있나요.
“무책임하잖아요. 무책임한 허구의 세계에 있고 싶어요. 에세이나 칼럼은 내 생각을 직접적으로 말하는 거잖아요. 말할 게 없어요. 말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작가에게 에세이스트이기를 요구하는 시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젠 소설가들이 감당할 수가 없어요. 훨씬 뛰어난 에세이스트들이 많아요. 영화·여행·정치·요리 등 전문 영역에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옛날엔 작가들이 독점적으로 감당을 했던 거죠. 그때는 지식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무명 블로거 글만 봐도 얼마나 뛰어나요. 그래서 작가들이 쓸 수 있는 영역이 없어요. 그럼 작가에게 뭐가 남았느냐. 허구죠. 소설가에겐 이야기밖에 남은 게 없어요.”

이야기밖에 없다는 그가 첫 번째로 터뜨린 이야기는 2004년 발표한 첫 장편 『고래』였다. 문단은 발칵 뒤집혔다. 독특한 개성과 강렬한 흡인력에 문단은 당혹스러워 했다. ‘이야기에 빨려갈수록 당황했고,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그 이야기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문학평론가 류보선)’고 했다. 그래서 혹자는『고래』가 천 작가에게 양날의 칼 같으리라고 말한다. 2000년대 나온 소설 중 최고 문제작을 과연 스스로 넘어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장진 감독은 “천명관이 다시는 소설을 안 썼으면 좋겠다” 고도 했다.
“사람들이 그래요. ‘너는 앞으로 『고래』보다 더 나은 작품을 못 쓸 거야’. A라는 작품보다 더 좋은 걸 못 쓸 거라는데 A가 내것이네요? 거의 극상의 칭찬이잖아요. 다만 앞에 나오느냐, 뒤에 나오느냐의 차이인데 왜 앞에 나왔다고 아쉬워해요.”

-부담스럽지 않나요.
“전혀. 만약 그런 마음이 있었으면 『고령화 가족』같은 걸 안 썼죠. 고래가 갖는 스케일과 강렬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24평 연립에 사는 ‘찌질이’들 얘기를 보고 당연히 실망할 텐데. 근데 『고령화 가족』은 그렇게 쓰려고 목표를 잡았고 그 목표에 가깝게 갔어요. 전 만족해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담뱃갑과 라이터를 가리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제가 담배를 하나 그렸어요. 사람들이 ‘와, 정말 잘 그렸다’고 해요. 그리고 라이터를 그렸어요. 그랬더니 화를 내요. ‘왜 담배같이 안 그리냐’고. 담배 아니잖아요. 난 라이터를 그렸다고요. 사람들은 내가 담배를 그리려다 잘못 그려서 이렇게 나온 줄 알아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만약『고래』를 의식했다면 비슷한 걸 썼겠죠. 스케일 크게 더 화려한 구라로 그로테스크한 얘기를.”
인터뷰는 원래 지난달 27일(금요일)에 예정돼 있었다. 한 주 연재가 마무리되는 금요일이 좋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치 못하게 미뤄져 그를 만난 건 3일(목요일)이었다. 그는 전날 밤 9시에 일어나 밤새 소설을 쓰고, 우리가 만난 오후 3시까지 쭉 깨 있는 거라고 했다. “잠을 하나도 못 자 ‘멘붕(멘털 붕괴)’이라서…”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매일 소설을 쓰면 직장인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느낌이 좋아요. 너무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살아서 규칙적인 데에 동경이 있어요. 누가 월급 주면 출근하고 싶어요.”

-20대에 보험회사 영업사원 할 때가 좋았다는 얘기도 했던데.
“그냥 놔둬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유형이 아니라서…. 어제 9시에 일어났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깨 있는 건데, 너무 이상하잖아요. 어디 출근한다는 게, 너무 그립고 그래요. 어쨌든 연재를 하면 낮밤은 바뀌어도 하루의 일정 시간을 일하잖아요. 전 규제가 필요해요.”

-연재를 하는 이유인가요.
“연재를 하면 절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루 12장씩 쓰는데 어떻게 잘 쓰겠어요. 소설은 전작을 써야 해요. 끊임없이 전체를 통제하고 계속 바꾸고. 특히 저 같은 스토리텔러는 구성이 중요하잖아요. 연재를 하면 큰 걸 바꿀 순 없어요. 이미 간 길을 되돌릴 수 없는 거예요. 하루 12장씩 써서 넉 달에 장편 하나를 쓰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럼 뭐하러 하나요. 단지 규제하려고?
“그래도 하는 이유는, 연재를 안 하면 안 쓸까 봐.”

-그렇게까지 부지런히 써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축구에서 폼(form)이라는 말을 써요. 해설자가 ‘저 선수가 요새 폼이 올라올 때가 됐다’ ‘저 팀은 요새 폼이 무너졌다’ 이런 말을 하는데 컨디션이랑 비슷한 말이에요. 요새 저도 폼이 무너진 상태거든요. 부상 상태에도 뛰는 건데, 이런 거죠.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가 골을 넣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부상을 당해도 뛰는 누군가가 골을 넣어요. 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도 벤치에 앉아 있으면 골을 넣을 수가 없어요. 뛰는 거예요, 계속.”

-선수가 골을 위해 뛴다면, 작가는 뭘 위해 쓰나요.
“저한테 골은…, 100만 부? 하하.”



천명관. 2003년 문학동네 신인상 소설 부문에 <프랭크와 나>가 당선돼 등단했다. 이듬해 첫 장편 <고래>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소설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기존의 상식을 보기 좋게 훌쩍 비켜서는'(임철우), '전통적 소설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작품에 빚진 게 별로 없는'(은희경) 듯하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소설가가 되기 전에는 오랫동안 영화를 꿈꿨다. 30대를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지망생으로 보내면서 '총잡이(1995)', '북경반점(1999)'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끝내 연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그 실패는 그를 소설가로 만들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어쩌면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의 삼촌 브루스 리> 작가의 말)라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소설을 읽는 이유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이 단지 부당하고 외롭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요? 나는 언제나 나의 소설이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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