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황 초청 예술의전당 신년음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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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전날에 이어 예술의 전당과 한국방송공사(KBS)가 공동 주최한 '2001 신년음악회'가열렸다.

박은성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의 연주로 진행된 이날 음악회는 올 겨울 들어 최저기온을 기록한 추운 날씨 탓인지 강동석ㆍ백혜선ㆍ조영창이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을 연주한 전날보다는 관객이 적어 군데군데 빈 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공연중 가장 관심을 모은 프로그램은 역시 중국계 신예 피아니스트 헬렌황이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가장조 K.488'이었다.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서곡으로 막을 연 KBS 교향악단은 두번째 프로그램으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넣었는데 23번 협주곡은 헬렌 황의 첫앨범에 수록된, 말하자면 그녀의 장기곡이었다.

4년 전 14세 소녀의 앳된 모습으로 한국을 찾았던 헬렌 황은 이제는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어엿한 숙녀가 되어 등장했다.

23번 협주곡은 총 27곡에 달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서도 명곡으로 꼽히는 곡으로 모차르트의 원숙기에 해당하는 1786년 작곡됐다.

모차르트 특유의 생기발랄함뿐 아니라 아다지오의 2악장에서는 더없이 슬프고 멜랑콜릭한 정서가 가슴을 저미게 하는 선율로 흐르고 있어 모차르트 후기 걸작으로 손색이 없다.

이날 헬렌 황의 연주는 과연 그녀가 왜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역시 어린 나이의 한계는 감출 수 없다는 생각 또한 들게 하는 연주였다.

1악장이나 3악장에서의 물흐르는 듯한 리듬감과 타건의 생기발랄함은 그녀가 모차르트 음악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으나 2악장에서는 여백미가 다소 부족해 앞으로 그녀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황에게서 머레이 페라이어나 안드라스 쉬프가 녹음한 모차르트 협주곡 수준의 원숙미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신동에 대한 경외감이 퇴색돼 버린 오늘날 단순히 그녀를 신기함만 가지고 바라보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KBS 교향악단이 헬렌 황의 호연을 뒷받침해 줄 만큼 만족스러운 연주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KBS 교향악단의 연주는 모차르트 특유의 생기발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입체적 리듬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밋밋한 느낌을 주었으며 통일성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연주였다.

오히려 중간휴식 직후에 연주한 박영근의 창작곡 '동방의 아침'에서는 표정이 풍부한 꽤 휼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결국 문제는 의지와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베를린 필 수준이 될 수 있겠나' 하는 열등감이나 매너리즘에 빠져 있대서야 언제까지나 그저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 쾰른 국립음대 대학원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홍수진이 협연한 비에냐프스키의 '파우스트 판타지'는 큰 흠은 없었지만 왠지 힘겨워 보였으며 마지막 순서로 연주된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는 너무 요란스러웠다.

KBS 교향악단은 별로 열기없는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위해 '라데츠키 행진곡'을 앙코르로 선사하며 자연스런 호응을 유도했으나 공연장 밖의 날씨만큼이나 박수 소리도 썰렁해 기대했던 열띤 반응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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