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팬 안방에 다 모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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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위성 2TV가 신년벽두 영화팬들을 가슴설레게 할 특집을 마련했다. 새해 1월 1일~5일 오후 5시10분 방송하는 '해외영화제 수상작 시리즈' 가 그것. 베를린.칸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다섯 편의 면면은 그동안 철지난 한국영화나 할리우드 고전을 주로 소개하던 위성TV로서는 보기드문 기획. 화끈한 오락물이 아닌 탓에 국내에서는 짧은 극장개봉을 거쳤을 뿐 지상파TV는 물론이고 동네 비디오대여점에서도 보기힘든 수작들이다.

이를테면 '예술영화' 취향이지만, 유년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골수 영화팬이 아니더라도 차분한 신년맞이에 제격이다.

히가시 요이치 감독의 95년작〈그림 속 나의 마을〉 (1일) 은 KBS 위성TV가 처음 방송하는 일본 영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시골마을을 무대로, 후일 실제 화가가 된 쌍둥이 형제의 어린 시절을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려낸다.

주인공을 비롯 출연진 대부분이 직업 배우 아닌 동네 사람들인 이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받는 등 일본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다.

같은 유년시절이 배경이지만 러시아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92년작〈눈오는 날의 왈츠〉 (2일) 는 빛깔이 영 다르다.

90년 55세의 나이에 쪼가리 필름을 모아 만든 데뷔작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의 처절한 사실성으로 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던졌던 감독은 두번째 영화인 이 작품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혹독한 생존 조건 속에서 성장하는 소년의 삶과 사랑을 그린다.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슬램〉(3일) 은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 마크 레빈의 98년 극영화 데뷔작. 꽉 막힌 인생의 출구를 랩과 시의 혼성장르쯤 되는 〈슬램〉의 독특한 운율을 통해 해소하는 빈민가 출신 흑인 청년이 주인공으로, 이전의 흑인영화에서 볼 수 없던 접근법을 시도한다.

어린 소녀가 금붕어를 사러 가는 얘기가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자파르 파니히의 95년작〈하얀 풍선〉(4일) 과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91년작〈그리고 삶은 계속된다〉(5일) 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전개하는 솔직담백한 이야기로 새로운 영화언어를 제시한 이란영화의 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하얀 풍선〉이 금붕어 사러 가는 얘기이고,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대지진을 겪은 이란 북부로 감독 키아로스타미가 87년작〈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했던 아역배우를 찾아가는 얘기. 다섯 편 모두 한국어 더빙 없이 자막처리로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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