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호구냐” “이게 뭐하는 거야” … 난장판 된 전국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통합진보당 전국 운영위원회가 4일 오후 이정희·유시민·심상정·조준호 공동대표와 운영위원 등이 참석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이정희·심상정 대표(왼쪽부터)가 운영위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모습이 문틈 사이로 보이고 있다. [최승식 기자]

4일 오후 2시, 통합진보당의 중요 의결기구인 전국운영위원회가 소집됐다. 비례대표 부정 경선에 대한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비당권파는 공동대표단과 비례대표 1, 2, 3번 당선인 사퇴 및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의 카드를 준비한 상태였다. 그러나 당권파는 오히려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한 조준호 공동대표에게 적반하장식으로 융단폭격을 가했다. 50명의 전국운영위원 중 당권파는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회의를 주재한 이정희 대표는 당권파 운영위원들을 등에 업고 모두발언에서부터 작심한 듯 비당권파를 몰아붙였다.

 ▶이정희=“부정의 구렁텅이에 당원들이 빠져들었다고 비난 받은 현실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다. 진보정치에 십수년 몸 바친 당원을 책상머리에서 부정행위자라고 내몰 수 있나. 조사위는 진실을 밝힐 권한이 있지 모욕 줄 권한은 없다. 당원 한 사람의 명예라도 헌신짝 취급해서는 안 된다. 편파적이고 부실한 조사는 내가 서울을 떠나 있는 동안 일어났다. 조사위 보고서는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이다. 부풀리기식 결론은 받아들일 수 없다. 6월 3일 실시될 당직 선거엔 출마하지 않겠다. 나를 중심으로 짜여질 차기 당권 구도는 없다. 그러나 12일 중앙위가 끝나는 즉시 내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겠다. 그게 제가 책임 지는 방식이다. (심상정 등이 주장하는) 즉각 총사퇴는 옳지 못하다. 비대위는 당을 표류시킬 선택이다. 당원의 명예를 지켜낼 수 있다면 몸이 가루가 돼도 후회 없다.”

 이 대표가 진상조사위와 비당권파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발언을 내놓자 회의장 일각에선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고, 유시민·심상정 대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대표의 주장은 곧 당권파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의 입장이다. 민노당 최고위원 출신의 윤금순 당선인마저 ‘오염된 기득권’을 거부하며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했음에도 경기동부는 ‘마이웨이’를 선언한 것이다. 당 안팎에선 윤 당선인의 사퇴로 ‘경기동부의 두뇌’로 불리는 이석기 당선인에게 공이 넘어오자 그를 ‘결사보위’하기 위해 반격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당초 모두발언을 하지 않으려던 비당권파 측도 반격에 나섰다.

 ▶유시민=“부정선거냐 부실선거냐를 떠나서 우리 당의 경선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공개가 마땅한 투표소별 득표 현황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수많은 착오로 얼룩진 총 투표수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런 선거를 본 적이 있나. 우리가 옳다는 확신, 바르게 행동하고 있다는 확신이 흔들린 것이야말로 당이 흔들린 근본적인 원인이다.”

 ▶심상정=“가슴이 먹먹하다. 아침에 민주노총 산별대표자들이 찾아왔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었던 것이냐’라는 절규들이 쏟아졌다. 진보정치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진보정치 내부의 조직 논리와 국민과의 갭이다. 통합진보당은 헌법과 정당법으로 뒷받침되는 공당이다. 공천 과정을 비롯한 모든 과정은 국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폐쇄적 조직 논리와 내부 상황논리, 우리의 치부를 가리는 낡은 관성과 유산을 과감하게 척결해야 한다.” 이어 조준호 대표도 “조사위원장을 제안 받고 ‘이거 폭탄 돌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저와 조사위원은 최선을 다했고, 온전하지는 않으나 할 만큼 했다. 결과를 놓고 어떤 분들이 상처를 입고, 다른 분들이 득이 된다는 고려를 하지 않았다. 어떠한 미련도 남음도 없다”고 받아쳤다. 그러자 3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방청석에서 조 위원장을 향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겁니다”라고 소리쳤다.

 진상조사위의 보고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당권파 측에서 “의혹 그만 제기해” “지금 뭐하는 거야. (조사 결과는) 무효야, 무효” “우리가 호구로 보여” 등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한 당권파 운영위원은 “조·중·동과 수구세력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언론에다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할 수 있나. 진상조사가 부실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준호 대표는 “아무도 (선거를) 관리하지 않았고, 투표수가 맞지도 않는데, 이걸 총체적 부정·부실 선거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겠나. 가져온 투표함에서 드러난 현상은 (한숨을 내쉰 뒤)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었다”고 맞받았다. 당권파 운영위원의 거친 질문과 이에 동조한 방청석의 야유는 계속 이어졌다. “당이 개판이 됐잖아”, “차라리 아니면 말고라고 해”라는 고함이 터져 나오자 이 대표도 잠시 정회를 선언했다. 정회가 되자 유 대표는 이 대표에게 “회의가 인터넷으로 방송되고 있으니 방청객을 내보내고 회의를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소란이 일어나자 유 대표는 방청객을 향해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지금”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심 대표도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회의장을 나갔다.

  당권파는 자신을 선(善)으로, 상대방을 적(敵)으로 간주하는 흑백론적 이분법, 적에겐 가혹하면서도 자신에겐 관대한 이중성, 보편적 원칙이나 윤리보다 조직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속성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불리한 사안에 대해선 일단 부정과 반박으로 대응하면서 시간을 벌고,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결국 특정 개인의 희생을 통해 조직을 보호하는 수순으로 마무리 짓는 게 당권파의 행동 패턴이었다.

 서울 관악을 야권연대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이 대표 측의 여론조사 조작이 들통났을 때가 그랬다. 당시 이 대표는 후보 사퇴 요구에 대해 “(조작이) 당락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거절하며, 사흘간 버텼다. 이번에도 경기동부는 “일부 선거관리 부실이 있었지만 비례대표 경선 순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며 버티고 있다.

류정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