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만드는 숨은 힘, 자원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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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은 다음 달 12일 막을 올리는 여수세계박람회에서 조직위 직원과 도우미,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입을 유니폼을 공개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외국인을 비롯해 1만5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박람회장 출입관리·안내·교통·통역 등 9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펼친다.

오는 7월 27일 막을 올리는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영국에서는 자원봉사자 교육이 한창이다. 신청자 25만 명을 대상으로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7만 명을 선발했다. 면접을 한 심사위원 1800명도 먼저 선발해 훈련을 마친 자원봉사자였다. 이들은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관객이 화장실이 어딘지 물을 경우 자연스럽게 남녀 화장실을 둘 다 알려준다’는 것까지 교육받을 정도로 강도 높은 준비 과정을 거친다. 이들은 보통 2주에서 길게는 4주까지 자비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권석하 IM컨설팅 대표는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영국에서는 자원봉사자가 빠지면 사회가 돌아갈까 걱정할 정도”라며 “영국인에게 이런 자원봉사는 삶 속에 깊이 뿌리박힌 하나의 생활 방식”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자원봉사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런던올림픽 자원봉사에서도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와 영국 초콜릿 회사 캐드버리에서 교육 비용을 후원한다.

자원봉사가 생활인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기업과 연계한 다양한 활동이 돋보인다. 전 세계 사업장 임직원들의 자원봉사를 독려하던 스타벅스는 2009년 대상을 소비자들에게까지 확대했다. 지역사회를 위해 5시간의 봉사를 하는 시민들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는 ‘5시간의 약속’ 캠페인이다. 직원들은 애사심이 높아지고, 스타벅스는 소비자를 선점하는 마케팅 효과까지 얻었다. 2010년 도입한 디즈니의 ‘자원봉사 하루, 디즈니랜드에서 하루(Give a Day, Get a Disney Day)’ 캠페인도 100만 명이 참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일정시간 자원봉사를 하면 디즈니랜드 이용권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디즈니는 재정이 열악해 자원봉사 참가자에게 혜택을 주기 어려운 시민단체에 간접지원을 한 셈이다. 기업 이미지가 좋아진 것은 물론, 봉사자들이 디즈니랜드에서 부대시설을 이용하면서 매출까지 늘었다. 이 행사를 기획한 미국의 대표적 자원봉사단체 ‘포인츠오브라이츠(촛불재단)’의 개러드 존스 부회장은 “앞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글로벌 기업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이라며 “기업과 비정부기구(NGO)는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낼 독창적인 방법을 발굴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원봉사 행사는 전국자원봉사 대축제다. 1994년 중앙일보가 미국·영국의 ‘변화를 만드는 날’ 행사를 도입하며 시작됐다. 행사의 취지는 기간 중 단 하루라도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다양한 형태의 봉사활동을 펼침으로써 우리 이웃, 우리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다. 해마다 특정한 주제를 정해 자원봉사를 진행하는데 참가자들이 사진과 함께 활동보고서를 제출하면 우수 개인 및 단체를 선발해 시상한다. 첫 행사 때 32만 명이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3회 때부터 참가자가 1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나 한국 자원봉사의 근간으로 성장했다. 19회째를 맞는 올해는 ‘희망의 새이름’을 주제로 다음 달 1일부터 한 달간 이어진다. 참가를 원하는 개인·가족·단체·기업·학교는 홈페이지(www.nvf.kr)에서 참가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해 e-메일(nvf@nvf.kr)이나 팩스(02-751-9688)로 보내면 된다. 대축제 기간 중 최소 4시간 이상 자율적으로 봉사를 실천하고 그 내용을 6월 29일까지 제출하면 31개팀을 선발해 총 2150만원의 상금을 준다.

하지만 시민들의 자원봉사가 태동기인 한국에서는 기업들의 역할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중요하다.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올 신년사에서 “국민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어려운 이웃,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역시 신년사에서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는 사회공헌과 협력업체와의 공생·발전을 더욱 강화해 국가 경제와 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모범적인 기업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내놓은 ‘기업·기업재단의 사회공헌실태’에 따르면 2010년 우리 기업들이 지출한 사회공헌비용은 2조8735억원으로 2009년보다 8.4%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2005년(1조4025억원)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국내에서 기업과 시민들이 어우러지는 대표적인 자원봉사 행사가 바로 ‘위아자 나눔장터’다. 위아자는 저소득층 아동에게 교육·복지·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스타트(We Start)운동’, 우리 사회의 친환경적 변화에 앞장서는 ‘아름다운가게’, 1994년 중앙일보가 처음 시작한 ‘자원봉사 대축제’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2005년 서울에서 처음 열렸고, 2009년부터는 미국 LA와 시카고 등에서도 열리고 있다. 안 쓰는 물건을 재활용하고 자원봉사와 기부를 통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자선 벼룩시장이다. 지난해까지 일곱 차례의 행사에 233만 명의 시민이 참가했고 300개의 기업과 3600명의 자원봉사자들도 땀을 흘렸다.

올해에는 다음 달 12일 막을 올리는 여수세계박람회에서도 자원봉사의 큰 장이 선다. 박람회 조직위원회는 지난해 말 외국인을 포함한 1만5000명의 자원봉사자를 선발했다. 4만5000명의 신청자 가운데 서류와 면접을 거쳐 뽑힌 이들은 박람회장 출입관리·안내·교통·통역 등 9개 분야에서 봉사활동을 펼친다. 현대·기아자동차를 비롯한 9개 공식 후원기업은 자원봉사자 지원에도 나선다. 롯데칠성음료는 박람회 기간은 물론 준비기간에도 조직위원회 임직원과 자원봉사자에게 음료를 공급한다. 제일모직은 박람회 관계자들에게 갤럭시·구호·빈폴·후부 브랜드의 유니폼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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