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지역주의 극복 나섰던 노 전 대통령이 혀를 찰 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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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06면

민주통합당 김한길 당선인이 28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사무실에서 친노·호남의 당직 분담론을 비판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민주통합당이 이해찬 상임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의 당 대표-원내대표 역할분담론으로 요동치고 있다. 4년 만에 여의도로 복귀한 김한길 당선인이 역할분담론을 ‘밀실 담합’으로 비판하며 공세의 전면에 섰다. 김 당선인은 1997년과 2002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대선 승리 공신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친노(친노무현)도 동교동계도 아니다. 그래서 그가 이 상임고문-박 최고위원의 친노·호남 연합 진영에 맞선 경쟁자로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 안팎에선 6월 당 대표 경선이 이 상임고문과 그의 각축전이 되리란 전망도 이어진다.

‘밀실 담합’ 맹공 나선 대선 전략가 김한길

28일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김 당선인은 “계파의 진영 논리에 모든 것이 압도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원내대표는 비노(비노무현) 또는 호남에서, 당 대표는 친노 또는 충청에서 한다는 식의 발상은 과거회귀적이다. 평생 지역주의 극복에 나섰던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이런 상황을 봤다면 혀를 찰 일”이라고 주장했다.

-역할분담론엔 왜 반대하나.
“대선은 미래지향적 투표다. 민주통합당은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자리는 어느 지역 또는 어느 진영 사람이 한다는 식의 밀실 합의가 미래지향적인가. 일을 가장 잘할 만한 유능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 것, 그래서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게 노무현 정신이다. 계파나 지역을 따지지 않고 ‘국민이 이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라고 판단해서 뽑아야 하는데 밀실 합의로 하면 이는 노무현 정신에 반하는 주장이다. 이번에 초선이 된 50여 분의 우리 당 의원들에게 처음부터 줄 세우기 훈련을 시키려 하나.”

-친노와 동교동계 일부가 화학적으로 결합했다는 반론도 있다.
“진짜 화학적 결합이라면 하나의 명찰을 달아야 한다. 총선 실패의 원인 중 하나가 계파 공천이었다. 공천이 계파 간의 힘겨루기 장이었다. 총선 실패를 극복하려면 먼저 친노·비노의 명찰을 떼어내고 친국민이라는 하나의 명찰을 달고 갔어야 했다. 우리 당이 두 전직 대통령을 기리고 충분히 되새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시대정신은 그분들의 유산을 바탕으로 과거를 넘어서는 새로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 명찰을 달고서 ‘우리 둘이 화해하면 된다’면 답이 아니다.”

-영남권 대선 주자-중부권 당 대표-호남권 원내대표란 지역 구도는 설득력이 있지 않나.
“그런 주장엔 지역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중요한 점은 (대선 주자는) 경선이라는 절차를 통해 국민에게 다가서는 과정에서 역동성을 만들고 감동을 준다. 우리 당의 상당한 실력자로 자임하는 분들이 절차를 무시하고 (대선 후보를) 지정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큰 위험이 따른다. 12월 대선에서의 경쟁력에도 흠집을 낼 수 있다.”

-문재인 당선인이 당내에선 가장 유력한 주자인가.
“정말 많은 장점을 가진 분이다. 그런데 요즘 진행되는 상황을 보니 문 당선인에게 영향이 미칠까봐 걱정된다. 원내대표 경선을 놓고 문 당선인을 함께 거론해선 적절치 않다. 문 당선인은 우리가 소중하게 보호할 자산이다. 그분을 자꾸 끌어들이려는 이들은 생각이 없는 분들이다.”

-97년, 2002년 대선과 이번을 비교하면.
“상대 진영의 후보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뚝 서 있다는 게 비슷한 점이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사실상의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그렇지 않나. 2002년엔 대선이 80여 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노무현 후보 지지율은 15%로 추락하고 있었다. 내가 합류했던 그해 9월 말엔 이미 일부 인사가 포기하고 캠프를 떠날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이 그때보다 더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대선 승리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먼저 반성하는 자세와 이에 따른 혁신이 필요하다. 총선에서 국민이 차려준 밥상을 차버렸다고 많은 분이 말하는데 일리가 있다. 그런데 총선 직후 19대 국회 당선인 모임에 갔더니 나눠주는 소책자에 당선인들 명의로 ‘국민에게 사죄하고 뼛속까지 반성한다’는 선언문이 미리 인쇄돼 있었다. 일부 지도부가 ‘진 게 아니다’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다음 지도부에도 당연히 자신들이 포함돼야 한다고 여기는데 격전을 치르고 돌아온 분들 명의로 반성한다면 말이 되겠나. 새로운 민주당으로 가기 위한 첫 단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4·11총선에선 정당 득표율 등으로 따지면 야권이 앞섰다.
“패배한 배구 경기를 놓고 세트별 점수를 총합하면 이겼다는 논리와 다름없다. 모든 세트에서 나온 점수를 합친다고 이기나. 그런 논리는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번에 충청·강원에서 패배했는데 대선을 고려하면 굉장히 아프다.”

-반성과 함께 무엇이 요구되나.
“위기는 기회다. 지금 국민은 냉철한 시선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은 다음 달 4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무엇을 보여주는가다. 원내대표 경선 결과는 새로운 민주통합당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어 민주통합당이 수권정당·대안세력으로 국민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이게 우리 당 예비 주자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다. 당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대선 주자들의 개인기를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당내 대선 예비 주자들에게서 지원 요청이 있지 않았나.
“있죠. 그렇다고 내가 너무 앞서서 누구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면 적절치 않다. 지금은 전체를 위해 예비 주자 모두가 다 크는 게 좋다. 그래서 다 조언을 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된다.
“오죽했으면 4년간 여의도를 비워 당내 세도 없는 내 이름이 거명될까. 나는 갑작스레 서울 광진갑 선거에 뛰어들었는데 당 대표를 준비했겠나. 하지만 많은 분이 김한길이가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고민하겠다.”

-2008년 총선 때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이번엔 출마했다.
“나는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에게 노 후보를 팔아 넘긴다’는 비난까지 들으며 정 후보 측과 후보단일화를 추진했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런 내가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하고도 무책임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불출마한 이유다. 이번엔 정권을 되찾겠다고 결심했다. 한명숙 전 대표를 만나 ‘지역구니 비례대표니 다 필요 없고 총선 지
휘를 맡겨달라’고 했는데 내부 사정상 그렇게 안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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