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 항암제로 폐암 환자 생존기간 3배 늘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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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18면

국내 사망원인 1위는 암이다. 하지만 조기진단과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사망률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암이 고혈압·당뇨병처럼 만성질환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09년 인구 10만 명당 암환자는 387.8명이다. 1999년 214.2명보다 2배 정도 늘었다. 그러나 암환자 증가와 함께 의학적으로 암의 완치를 의미하는 5년 생존율도 높아졌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위암은 42.8%에서 65.3%로 22.5%포인트 증가했다. 대장암은 54.8%에서 71.3%, 폐암은 11.3%에서 19.0%로 뛰었다. 이같이 획기적인 생존율 증가 뒤에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맞춤 항암제로 치료하는 신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암센터 김열홍(종양내과 교수·사진) 소장에게 ‘맞춤 항암치료’에 대해 들었다.
 
-맞춤 항암치료란 무엇인가.
“암치료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에다 항암·방사선 치료가 병행된다. 수술만으로는 암의 재발률이 20~50%에 이르기 때문이다. 항암제를 이용해 암세포의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하거나 수술 후 미세하게 남은 암세포를 없애 재발률을 낮춘다. 맞춤 항암치료는 이렇게 항암제를 이용해 치료 성공률을 높이는 치료법이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됐다. 암환자의 약 50%가 맞춤 항암치료 대상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암센터 김열홍 소장에게 듣는 맞춤 항암치료

-맞춤 항암치료의 원리는.
“맞춤 항암치료의 핵심은 유전자 검사와 항암제 투여다. 특히 항암제는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제거하는 표적항암제가 이용된다. 암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고 세포에 영향을 줘 발생한다. 한 종류의 암은 수십 가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도 암 발생에 깊이 관여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 맞춤 항암치료는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항암제를 사용해 치료효과를 높인다. 지금까지 암 종류별로 몇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맞춤 항암치료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발견과 여기에 효과를 보이는 항암제의 개발이 함께 가야 가능하다.”

-맞춤 항암치료의 장점은.
“암도 골라서 치료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항암 부작용 없이 암치료 효과를 높이는 최상의 치료 시나리오를 짤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같은 암에 걸린 A, B 두 명의 환자가 있다. 같은 항암제로 치료했다. 하지만 한 환자는 치료효과가 좋고, 다른 환자는 전혀 효과 없이 부작용만 겪는다. 암을 일으킨 유전자 돌연변이가 달라서 발생한 차이다. 두 사람에게 사용한 항암제가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에게서만 효과를 낸 것이다. 맞춤 항암치료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리 항암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구분한다.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고 환자의 치료효과와 생존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항암제에 따른 환자의 부작용이 줄고 항암제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 부담도 덜었다.”

-유전자 검사 비용이 비싸지 않나.
“유전자 분석이 시작된 건 1990년부터다. 당시 한 사람의 전체 유전자 염기서열을 모두 분석하려면 300억 달러가 들었다.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도 암에 걸린 후 2005년 50만 달러를 들여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분석 기간만 1년이 걸렸다. 최근 유전자 검사가 대중화되고 있다. 2010년 기준 분석비용이 1만 달러로 떨어졌고 분석기간은 2주로 줄었다. 2014년이면 분석 비용이 약 100달러로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결과도 4시간 뒤 알 수 있게 됐다. 맞춤 항암치료에 필요한 유전자 검사는 암세포에 대해서만 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다. 30만~50만원의 비용으로 이틀 뒤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맞춤 항암치료가 활발한 분야는.
“폐암·위암·대장암·유방암이다. 이 중에서도 폐암이 선두에 있다. 폐암 환자에게선 EGFR, ALK 등 8종류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견됐다. 이 중 EGFR과 ALK에 효과를 보이는 세 가지 항암제가 나왔다. 이레사, 타세바, 크리조티닙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맞춤 항암제를 사용하자 6~9개월에 불과하던 환자의 생존 기간이 평균 2~3년까지 연장됐다. 크리조티닙은 약 5%의 폐암 환자에게 기적의 약으로 불린다. 폐암 환자의 유전자 돌연변이 발견이 늘며 여기에 치료효과를 보이는 항암제 개발이 한창이다.”

-위암의 맞춤 항암치료 효과는 어떤가.
“위암 환자에게서는 건강한 사람보다 HER-2라는 유전자가 많이 나타난다. 이 유전자는 유방암 환자에게도 많다. 위암에는 HER-2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허셉틴(표적항암제)과 기존 항암제를 함께 투여하면 치료 결과가 좋다. 현재 허셉틴의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는 위암 환자는 약 10%이지만 위암의 맞춤치료 문을 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위암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EGFR, FGFR, c-met 등 유전자를 기반으로 한 표적치료제가 개발 중이다.”

-대장암·유방암·피부암도 맞춤치료가 적용된다는데.
“대장암은 APC, KRAS, p53 등 6개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이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암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의 성장을 막는 항암제 아바스틴이 개발됐다. 얼비툭스 항암제는 난치성 직결장암 환자를 치료한다. 유방암 환자는 네 가지의 유전자 돌연변이 그룹이 있고 세 가지 표적항암제가 나왔다. 피부암인 흑색종을 치료하는 베무라페닙은 BRAF라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의 50%에서 효과적이다. 기존 항암치료보다 사망률을 63% 감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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