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검찰서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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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리한 진술은 한마디도 안 한다.”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27일 이정배(55) 파이시티 전 대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제2의 이국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고 했다. 정권 실세 금품로비 사실을 폭로하고 외압에 의해 회사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점은 같지만 불리한 부분은 철저히 감춘다는 의미다.

 지난 26일 본지 기자와 만난 이 전 대표는 중수부 수사를 1주일째 받고 있는 사람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그는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52)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에게 40억원 가까운 돈을 주고도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섭섭한 마음은 없다”고 했다. 또 “원래 힘센 사람들에게 돈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결국 (돈을 준 건) 내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로비 부분에 대해 알려진 내용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로비 대상은 최시중씨와 박영준씨 외에는 없었고, 모든 돈은 이동율(60·구속) DY랜드건설 대표를 통해 건넸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해외 출장 중에 한 차례 최 전 위원장에게 돈을 건넸지만 이 대표의 심부름을 하는 형식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처음 돈을 줄 때) 최 전 위원장이 민간인 신분이어서 부담이 없었다”며 “검찰이 박 전 차장에 대해서는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자신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공격’한 배후로 이팔성(68)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권재진(59) 법무부 장관을 지목했다. 2010년 경찰청 특수수사과로부터 받은 수사가 이 회장의 부탁으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 장관이 시켜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는 “기관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면서도 뚜렷한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한 언론을 통해 “정권 실세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고, 정권 차원에서 기관을 동원해 회사를 빼앗았다”고 주장한 이국철(50) SLS그룹 회장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이국철 회장이 자신의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금품 제공 사실을 폭로했던 데 반해, 이 전 대표는 아직까지 ‘알선수재의 공여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나는 언제든지 피의자로 신분이 바뀔 수 있는 사람”이라며 조심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국철 회장이 사건 초기부터 언론을 통해 단계별로 ‘비망록’을 공개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반면, 이 전 대표는 검찰 수사 1주일 만에 언론을 통해 ‘폭로전’에 나섰다. 두 사람 모두 ‘빼앗긴 회사를 되찾겠다’는 게 주목적이지만 이 전 대표 쪽이 더 조심스러운 모양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국철 회장이 ‘자폭테러’ 스타일이라면, 이정배씨는 아직까지 게릴라전과 심리전을 펼치는 것 같다”고 평했다.

 ◆검찰 수사 ‘숨고르기’=중수부 관계자는 이날 “박 전 차장에 대한 수사는 이제 막 시작했다”면서 “최 전 위원장과 박 전 차장은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고 했다. 최 전 위원장의 경우 협박편지와 사진 등이 발견돼 혐의 입증이 쉬웠지만 박 전 차장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검찰은 박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하는 한편 계좌추적과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증거 확보에 전력하고 있다. 또 서울시로부터 파이시티 인허가 관련 자료도 넘겨받아 분석 중이다. 최 전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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