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일본 에키벤과 한국 레일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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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3월에 일본을 두 번이나 가게 되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규슈(九州)를 일주하게 되었다. 남한 면적의 절반만 한 규슈를 두 바퀴 돌면서 주로 이용한 교통수단은 열차였다. 그러다 보니 두 번의 규슈 일주는 본의 아니게 에키벤(驛弁) 투어가 되었다.

 에키벤. 역의 일본어 ‘에키(驛)’와 도시락의 ‘벤토’를 합친 말로, 쉽게 말해 열차 도시락이다. 기록에 따르면 1885년 일본 철도 탄생과 함께 에키벤 역사도 시작됐고, 현재 2500종이 넘는 에키벤이 일본 전역의 기차역에서 팔리고 있다. 흥미로운 건, 에키벤에는 각 지역의 특색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삿포로엔 연어초밥 에키벤이 있고, 가고시마엔 돈코츠, 나고야는 닭찜 도시락을 파는 식이다. 해당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로 만든 일종의 지방 별미로, 현재 일본에는 에키벤만 먹으러 다니는 여행상품이 있다.

 에키벤을 이번에 처음 먹은 건 아니다. 전에도 일본에 갈 때마다 에키벤을 먹곤 했다, 하나 이번엔 의미가 각별했다. 일본은 일반인 설문 조사와 전문가 심사를 거쳐 해마다 지역별 에키벤 순위를 발표하는데, 마침 2월 말 지난해 순위가 공개됐다. 규슈에서 1위를 차지한 에키벤은 다케오온천역의 ‘사가규 스키야키(사진)’였다. 다케오온천역을 들렀지만 안타깝게도 맛을 보지는 못했다. 순위에 오른 에키벤의 경우 조금만 늦어도 다 팔려버리기 때문이었다. 지역색이 강한 에키벤일수록 한 끼에 20∼30개 정도만 만든다고 한다.

 지난주 코레일관광개발이 국내 열차도시락의 새 이름을 ‘레일락’으로 정했다고 발표했다. 코레일관광개발은 국내 열차 도시락 사업을 독점하는 자회사로, 올해 들어 일본처럼 명품 도시락을 만들겠다고 벼르는 참이다.

 자, 그럼 맛이 있을까. 3년 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에키벤을 두고 “너무 아름다워서 먹는 건 범죄” “요리인 동시에 수공예”라고 늘어놨던 극찬을 레일락도 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이 정도는 바라지도 않는다. 더도 말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만 안 들어도 고맙겠다. 명색이 특급 호텔이 납품한다는 우리네 열차 도시락은, 에키벤처럼 역사도 없고 스토리텔링도 없다. 무엇보다 맛이 없다. 그러나 가격은 별 차이가 없다. 2010년 1년을 꼬박 기차여행 시리즈를 연재하며 온몸으로 배운 교훈이다. 다음 주에 레일락이란 이름의 열차 도시락이 세상에 나온다. 꼭 먹어보고 맛을 알려 드리겠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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