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월가, 80조원짜리 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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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이 ‘깜짝 실적’으로 시장을 놀라게 했다. 애플 주가가 추락할 것이란 일부 예측도 무색하게 했다. 쿡이 지난달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뉴 아이패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얼마 전 미국 월가에서 음울한 시나리오가 나돌았다. 이른바 ‘애플 버블(Apple Bubble)’의 붕괴였다. 비상하는 애플의 주가가 돌연 추락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애플 주가는 9일 역사상 최고치에 올랐다. 한 주 값이 636.23달러에 달했다. 10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주가가 급락했다. 일부 전문가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 직후 주가 급락이 바로 버블 붕괴의 단서라고 말한다.

 애플 주가는 무서울 정도로 떨어졌다. 불과 보름 만에 12%나 떨어졌다. 시가총액이 708억 달러(약 80조7000억원)나 사라졌다. 국내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현대와 기아자동차를 합친 시가총액이 그 사이에 증발한 셈이다.

 증권 전문가는 자산 가격이 최고치에서 20% 떨어지면 침체 시작이라고 한다. 어지간해선 자산가격이 회복하기 힘든 단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택 시장이 대표적이다. 미국 집값은 20% 떨어진 뒤 좀체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애플도 이러한 침체 국면에 들어설 것처럼 보였다.

 조만간 투매 현상도 일어날 듯했다. 헤지펀드 200여 곳이 움켜쥐고 있는 애플 주식을 투매(덤핑)할 수도 있어서다. 그들은 초저금리 시대 낮은 수익률에 허덕이다 애플 주가가 크게 오르자 애플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그 바람에 애플 주식 비중이 턱없이 높아 조금만 주가가 더 떨어지면 헤지펀드가 휘청거릴 판이었다. 여차하면 펀드 매니저가 ‘매도’ 버튼을 눌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애플 파국(Apple Fiasco)’ 직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25일 오전(한국시간)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애플이 ‘깜짝 실적’을 내놓았다. “올 1분기 매출이 391억90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늘었다. CNN머니는 월가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려 “아이폰이 글로벌 시장에서 시간당 1만6000대씩 팔려나갔다”고 전했다.

 애플은 매출만 늘어나는 속 빈 강정이 아니었다. 순이익은 116억2000만 달러(주당 12.30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 59억8000만 달러(주당 6.40달러)보다 94.3%나 늘었다. 주당 순이익은 12.45달러나 됐다. 애플이 스스로 내놓은 주당 순이익 예상치는 8.5달러였다. 월가의 가장 낙관적인 예상치는 11달러 정도였다. 애플을 담당하는 월가 애널리스트 어느 누구도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예측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비관적인 예측을 내놓기 바빴다. 그들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판매가 시원찮을 듯하다’고 시장에 알렸다. 심지어 애플이 1분기 실적을 발표하기 직전 아주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애널리스트도 있었다. 미 투자은행 제퍼리스의 미터 미섹은 “애플이 올 1분기에 아이폰 2800만~3000만 대 정도 파는 데 그쳤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애플은 3510만 대를 팔았다. 전 분기보다 88%가 늘어났다. 아이패드는 1180만 대가 팔려나갔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월가는 중국 변수를 놓쳤다. 대륙의 소비자가 21세기 아이콘 반열에 오른 애플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지갑을 열었다. 애플의 1분기 중국 매출은 79억 달러나 됐다. 전체 매출의 20%다. 2년 전 중국 비중이 겨우 2%였다. 폭발적인 증가라고 할 만하다.

 월가 전문가는 미국 데이터만 봤다. 이동통신회사인 AT&T와 버라이즌이 내놓은 아이폰 개통 건수였다. 최근 미국 내 아이폰 개통 건수는 지지부진했다. 그들이 터무니없이 실수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1월 13일 애플이 아이폰4S를 중국 시장에 처음 내놨을 때 월가에선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대당 800달러가 넘는 고가 스마트폰이 중국 소비자에겐 ‘그림의 떡’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52)은 “중국의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엄청난 수의 중산층이 아이폰과 같은 첨단 제품의 수요자가 되고 있다”며 “중국은 애플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월가는 ‘80조원(시가총액 감소분)’짜리 판단 실수를 한 셈이다.

 놀라운 실적만큼 애플의 현금 자산 규모도 경이롭다. 3월 말 현재 현금 자산이 1100억 달러(약 125조4000억원)를 넘어섰다. 애플의 CEO인 쿡은 이 가운데 일부를 배당 등으로 풀 생각이다.

 애플은 앞으로도 잘나갈까.

 올 1분기 순이익을 지난해 같은 분기가 아닌 직전인 지난해 4분기와 견주면 조금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올 1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4분기(130억6400만 달러)보다 10% 이상 줄어들었다. 폭발적인 증가세가 한풀 꺾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인지 가파른 성장이 꾸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애플이 3분기에 아이폰5를 출시할 것이란 소문이 벌써 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신제품에 대한 기대 때문에 아이폰4S 매출이 둔화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애플이 아이폰4 출시를 선언하자 아이폰3의 매출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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