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주부, 5만원 받고 신용카드 만들었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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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내일까지 꼭 10만원 이용해 주세요. 제가 드렸던 선물 기억하시죠?”

경기도 성남에 사는 주부 서모(30)씨는 최근 생각지도 못한 문자를 받았다. 지난달 한 육아박람회에 갔다가 “5만원짜리 주방놀이 장난감을 공짜로 주겠다”는 말에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던 게 화근이었다. 발신번호로 전화를 걸자 카드 모집인은 “한 번도 카드를 쓰지 않았던데 10만원씩 3개월 이상 쓰지 않으면 선물 값이 안 빠진다”고 서씨를 채근했다. 서씨는 “발급 때엔 이런 조건을 설명하지 않았다”며 “내 카드 사용 상황을 모집인이 훤히 알고 있는 것도 영 찜찜하다”고 말했다.

 ‘5만원짜리 불량 미끼’가 카드시장을 휘젓고 있다. 카드 모집인이 제공하는 5만원 상당의 선물이나 현금이 불법 모집의 주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발급수수료 기본 2만~4만원에 고객이 카드를 사용할 경우 지급되는 수당 등 여러 가지를 합쳐 한 장당 평균 카드 모집인에게 5만원 이상을 준다”며 “모집 경쟁이 가열되면서 모집인들이 주는 선물이 5만원으로 엇비슷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현행 법규는 카드 연회비의 10%를 넘는 선물이나 현금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5년차 카드 모집인 이모(53)씨는 “1인당 평균 4장 이상의 카드를 갖고 있는데 치약 하나 주면 누가 새로 발급받겠느냐”며 “연회비를 대신 내주거나 최소 3만원 이상의 뭔가를 주지 않으면 영업이 안 된다”고 전했다. 회사원 김정연(33·여)씨도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갔다가 가족카드를 발급받고 연회비 5만원을 포함한 13만원을 통장으로 입금받았다. 모집인은 “VIP 카드는 7만원까지도 현금을 줄 테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 달라”며 명함까지 건네줬다.

 불법을 마다하지 않는 과당경쟁 탓에 모집인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다. 2010년 처음으로 5만 명을 넘어선 모집인은 올해 5만900명으로 최근 4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들에게 나가는 카드사 비용도 해마다 30%씩 꾸준히 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업계 전체의 모집 비용이 4년 전 3000억원에서 지난해 7881억원으로 5000억원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비용이 결국 고객에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보우 단국대 신용카드학과 교수는 “카드 모집에 들어가는 돈은 결국 가맹점 수수료나 카드론·현금서비스 금리에 반영된다”며 “카드사의 조달 금리가 꾸준히 낮아졌는데도 수수료율이나 금리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불법 모집은 고객 정보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집인들이 여러 카드사의 카드를 한꺼번에 취급하면서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에는 없는 카드사들의 과열 모집 경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카드업계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의식해 카드 모집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현대카드는 최근 직접 인터넷으로만 신청할 수 있는 ‘다이렉트카드’를 내놨다. 모집인에게 지급되는 비용을 줄여 고객에게 혜택을 돌려준다는 시도다.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도 “현재의 카드 모집 방식으로는 비용을 줄일 수 없다”며 “ 모집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김혜미 기자

카드모집인

고객에게 카드를 발급하고 카드사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는 중개 역할을 한다. 카드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발급수수료·이용수수료·정상결제수수료 등을 포함해 장당 5만원 정도를 받는다. 올해 3월 기준 여신금융협회에 등록된 전국 신용카드 모집인 수는 5만88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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