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의 입' 9년] 9. 깐깐한 외신기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1971년 봄 박정희 대통령 지원 유세장에서 김종필 공화당 부총재가 한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있다.

김종필(JP) 공화당 부총재의 외신 기자회견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출마를 가능하도록 하는 3선 개헌에 반대했었다. 때문에 외신기자들은 그가 박 대통령의 출마에 대해 뭐라고 얘기할 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의 박 대통령 지지 발언은 대서특필 됐다. 나는 이런 회견을 계속 주선하기로 결심했다. 박 대통령 쪽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게 김대중 야당 후보의 정력적 유세에 대응하는 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의 회견은 유세기간에 효력을 발휘했다.

나는 JP의 과거지사가 어떻느니, 파벌이 어떻느니 하는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돕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JP는 청와대 부대변인인 내가 홍보 목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거물이었다. 다른 거물들에게는 각자의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오직 3선 개헌에 반대했던 공화당 부총재만 유휴인력으로 남아 자기 집에서 관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매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선거전이 종반에 이르렀을 때 외신기자 중에서도 가장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기자가 서울에 들어왔다. 관계기관들은 모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필력과 그가 대표하는 신문사의 명성 때문에 모두가 겁먹고 있었다. 나는 그가 서울에 도착한 바로 그날, 그의 현지 연락원과 함께 셋이서 저녁을 하자고 초대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나는 요새 야당 측에서 낭설을 유포하고 있으니 그것을 기사화할 때는 확인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슬며시 끄집어냈다. 언론에 대한 간섭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는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물론이다. 나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은 절대로 기사화하지 않는다.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고 응대해왔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전이 너무 혼탁해 걱정이 된다"고 했더니 그는 "나에게 야간통행증을 발급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투표가 끝나는 시간까지 자기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야간에도 취재할 수 있게 해준다면 낭설 여부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는 즉석에서 승낙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야간통행증을 발급해 주었다. 나는 그의 속셈을 읽고 있었다. '그는 한국 정부는 나에게 야간통행증을 발급해 줄 수 없다고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야당의 낭설은 낭설이 아니라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하고 나를 통해 우리 정부의 반응을 엿보려 한 것이었다.

언론과의 관계는 어려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규제하고 비밀로 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언론과의 관계는 어려워지고 경직된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뒤 외신에서는 부정선거 운운하는 기사를 한 줄도 내보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외신의 보도 태도에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김성진 전 청와대 대변인·문공부 장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