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안국동 '조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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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맛있는 집이라고 해도 들어서자마자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오른다면 왠지 달갑지 않다. 손님이 음식을 시키는 게 아니라 준비된 음식이 잘난 체하며 손님을 기다리는 모양새니 말이다.

서울 안국동 로터리에 있는 '조금(鳥金·02-725-8400)'이란 음식점에는 손님을 손님답게 대접하는 메뉴가 있다.

영양이 풍부한 온갖 식재료를 넣어 만든 솥밥이 바로 그것. 주문을 받고 나서야 밥짓기에 들어가니 적어도 밥이 지어질 때까지는 상호의 말마따나 '조금' 기다리는 여유가 있다.

조금이라고 해도 20분 정도 걸리지만 식사하는 상대와의 대화가 무르익을 때면 나무뚜껑이 덮인 각각의 솥단지가 식탁에 오른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위로 빨갛게 익은 커다란 새우가 눈에 띈다.

뒤이어 보이는 양송이버섯·죽순·어묵·맛살·대추·쑥갓 등.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이쯤에선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군침소리가 밖으로 샌다.

우선 새우만 살짝 들어내 머리와 껍질을 벗겨 한 입에 넣고 서둘러 숟가락을 든다. 양념장을 얹어 비비다 보면 밥 속에 숨어있던 표고버섯·은행·밤·우엉·소라·유부·굴·완두콩·강낭콩·당근 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저 조그만 솥단지 안에 어떻게 그많은 재료를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 비빈 밥을 한술 한술 뜰 때마다 숟가락 안에 놓인 재료에 따라 맛이 다르다.

죽순의 상큼함, 어묵의 부드러움, 은행의 고소함, 소라의 쫀득함 등이 입안에서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느새 바닥에 누룽지가 나타나면 아쉬운 마음에 숟가락에 힘이 간다.

반찬으론 단무지·배추절임·오징어젓 등이 작은 개인종지에 담겨 나오고, 곁들여지는 일본식 된장국물도 나무랄 데가 없다.

가격은 1인분에 1만1천원으로 약간 비싼 편인데 입맛을 잃었을 때나 주머니 여유가 있을 때 찾을 만하다.

다른 메뉴로 우동(8천8백원)과 숯불에 구은 꼬치구이(2천5백~8천원)도 있다.

본점과 분점 두 개의 점포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두 곳을 합쳐봐야 80여개의 좌석뿐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 설과 추석만 쉬고 주차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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