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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자금 제대로 썼나] 5. 어떻게 관리·회수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외환위기 직후 직장을 잃은 宋모(38)씨는 은행대출금 1천만원도 못갚는 신세가 됐다. 그 이후 새 사업을 벌여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다.

얼마전 그는 은행으로부터 원리금 중 절반을 깎아주겠다는 제의를 받고 어리둥절했다. 이 은행은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이전의 대출손실을 이미 메운 상태였으므로 宋씨의 대출금을 일부만 회수해도 특별이익이 생기는 셈이었다.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들이 부실채권 회수를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다. 宋씨의 경우 1천만원을 갚을 능력이 되는데도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절반만 받겠다는 식이다.

공적자금과 관련, 앞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회수다. 잘만 회수하면 집행과정에서의 잘못도 상쇄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 어떻게 회수해야 하나=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보와 자산관리공사가 상업적 베이스에서 운영되도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부실채권을 비싸게 사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주문한다. "지금까진 정확한 평가 없이 정부 지시 등으로 대충 인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대우채권이다. 상업적으로 판단했다면 그 가격에 매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이 다음에는 두 기관이 부실채권 회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를테면 파산재단 관재인으로 예보 직원이 선임되게 해야 한다. "

부실채권을 가공하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산가치를 높여 팔아야 한다는 얘기다.

워크아웃이나 매입한 부실자산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세계적인 회사들과 합작하고, 전문가를 고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자산관리공사 매각이익 1조9천억원의 허실=자산공사는 그동안 금융기관으로부터 사들인 부실채권을 팔아 1조9천억원의 매각이익을 남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98년부터 올해 8월까지 무이자 조건으로 자산관리공사에 빌려준 채권이자분 2조5천2백43억원을 감안하면 손해다.

게다가 매각이익 1조9천억원의 절반인 1조원은 이자감면.독촉 등으로 채무자 스스로 빚을 갚도록 유도했거나(자진변제) 법정관리.화의기업이 예정된 계획에 따라 갚고 있는 특별채권 변제분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국제입찰.자산유동화증권 발행 등 공사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선진기법을 통한 부실채권 매각에서는 2천7백여억원의 매각이익이 나왔을 뿐이다.

◇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제구실 할까=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공적자금 집행과 관리, 회수과정에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별법은 또 정부 3인, 민간 5인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만들어 공적자금 문제를 총괄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심의.조정만 할 뿐 의결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지동현 연구위원은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에서 이를 공적자금의 최고결정기구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짚는다. "공적자금을 사용하는 주체가 감시역할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안맞는다. 통과된 법에 따르면 관리위원회가 재경부 산하에 있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재경부 장관과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취지에 맞는다.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공적자금 통과를 위한 또 하나의 장식품밖에 안된다. "

◇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공적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첫번째 요건은 투명성이다. 공적자금이 엄청난 국민부담을 유발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예산을 공개하는 정도의 투명성은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과 관리.회수 등은 모두 불투명해 책임지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활동하게 되면 공적자금 운용과 관련한 자료는 인터넷에 올려 국민들이 이를 바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승수 참여연대 변호사(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공적자금 투입 결정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판단오류를 막을 장치가 없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묻기가 힘들다. 투입된 이후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관리주체(컨트롤 타워)도 없다. 공적자금은 예산이 아니라 정부의 보증채무일 뿐이어선지 정부도 책임있게 나서는 모습이 부족하다.

새로 구성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공적자금 전반에 관한 심의.조정기능을 가진다고 하는데 형식적으로 운용되지 않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부실책임자에 대한 손배소를 통한 자금회수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예보가 예금보험료를 내는 금융기관에 대한 경영상태 등 사전정보를 충분히 알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갖고 있는 정보가 예보와 충분히 공유돼 금융기관에 대한 상시점검이 가능하도록 해야 공적자금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특별취재팀
심상복 차장(팀장).정철근.정재홍.서경호 기자(이상 경제부)이상렬.김현승.홍주연 기자(이상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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