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 폐기물 부지 선진국선 이렇게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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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폐기물 부지 확보의 책임을 맡고있는 한국전력공사는 요즘 바짝 몸이 달아있다.부지 공모시한이 내년 2월로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적극적으로 유치에 나서는 지자체가 없기 때문.

현재 국내 원전 16기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은 원전지역인 고리·영광 등 4곳에 임시저장되고 있다.저장능력은 9만9천9백 드럼. 현재 55%가 채워져 2008년에는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원전은 경제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갖는 양날의 칼이다.따라서 현재 폐기물처분장을 운영하는 선진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부지 확보과정에 진통을 겪었다. 원전 의존도가 높고,방사선폐기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프랑스·스웨덴·일본의 처분장 형태와 안전성·주민합의 과정을 현지 방문을 통해 알아봤다.

◇처분장 형태=프랑스 파리에서 동남쪽으로 2백50㎞ 떨어진 슐랭듀이읍. 목가적 풍경속에 자리잡은 로브처분장에는 비가 뿌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방사성폐기물이 담긴 드럼을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 저장하느라 부산하다. 이곳 처분장은 전형적인 천층 처리방식이다.천층처분이란 지표면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저장하는 방식.

로브처분장이 가로24·세로21·높이8m의 구조물을 지표면에 세운 것과는 달리 일본 로카쇼처분장은 같은 천층방식이라도 땅을 10여m 파고 내려가 콘크리트 벽으로 마감한 것이 다르다.

반면 스웨덴 포스마크처분장은 암반으로 이루어진 지형 특성을 살려 동굴방식을 채택하고 있다.이 처분장은 폭 8m,높이 6m나 되는 아치형 동굴이 바닷속에 4.5㎞나 뻗어있다.특징은 다소 방사능이 높다싶은 폐기물은 별도 분리, 특수 격납고에 격리시킨다는 것.

시설책임자 보 코웨마크씨는 “모든 시설이 중앙집중식 컴퓨터시스템으로 제어되어 15명의 직원만이 상주하고 있다”며 “천층보다 건설비용은 많이 들지만 관리비 절감과 안전한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안전성 확보=원전 58기로 세계 2위인 프랑스는 이미 용량이 다 찬 라망쉬처분장을 94년 성공적으로 폐쇄한 경험이 있다.2차 처분장으로 운영되는 로브는 지난 1천년간 진앙 흔적이 없을 정도로 지형이 안정된 곳.

시설을 안내하는 시실 크라퐁씨는 “폐기물을 저장하기 직전 드럼에 찍힌 바코드를 레이저로 읽어 폐기물이 저장된 위치·분실여부 등을 자동시스템으로 최종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처분장 주변의 환경감시는 원자력규제기관인 산업국지역사무소(DSIW)와 환경연구소(SCPRI)의 몫이다.처분장이 들어서기 전 조사한 1천5백종의 시료 분석데이터와 이후 반복되는 조사자료들을 비교하고 있다. 가동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공기·목초·흙은 물론 이 지역 생산 우유 등 항목별로 연 1만7천여회의 환경분석을 할 정도로 철저하다.

스웨덴의 동굴시설은 7천여년간 지하수의 움직임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지만 환경 감시 활동은 빈틈없다.86년 모니터링 활동 중 이상한 징후를 발견,이를 추적한 끝에 체르노빌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고발생 1주일만에 세계 처음으로 확인했을 정도로 기술수준이 높다.

일본도 전체 발전량의 36.8%를 52기의 원전에 의존하는 원자력 대국이다. 하지만 원폭피해국답게 주민들의 자발적 감시가 활발하다.

로카쇼촌 하시모토촌장은 “자체 원자력안전대책위원회를 두고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듣거나 환경감시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합의=방사성폐기물은 주민들과의 공감대와 신뢰감 형성없이는 운영되기 어렵다.관리자와 주민이 함께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투명성. 프랑스의 경우 부지선정에서부터 건설·운영 등 모든 단계에 주민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홍보책임자인 크리스토프 뇌뇨씨는 “환경감시 역시 주민 참여하에 실시한다”며 “조사결과는 언론은 물론 인터넷에 24시간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부지를 선정한 뒤 지자체에 수용해 줄 것을 요구한 일본의 경우 현과 촌에 협의회를 구성,적극적으로 주민 참여를 유도했다.협의회를 통해 주민 요구 사항을 정부에 제출토록 한 것이다.

스웨덴 포스마크도 원자력홍보의 기본원칙을 대중의 알권리 충족으로 삼고 건설현장 공개와 홍보를 위한 오픈 하우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발전을 위한 지원도 주민합의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세제혜택·고용 창출·공공사업 등으로 지역이 발전해 온 사실에 만족했다. 프랑스는 일시불로 43억원을 지원한 뒤, 장기저리 융자와 주민소득증대를 위한 지역개발사업을 적극 후원했다.예컨대 폐기물 운반이나 홍보물 제작을 지역 업자에게 맡기는 식.

일본 로카쇼촌도 폐기물 처분장 유치후 부촌으로 탈바꿈했다. 수영장·학교 등 공공시설 및 환경개선에 2백30억엔이 투자됐고, 전원지역에 적합한 산업체 유치나 관광자원 개발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 특히 주민과 호흡하는 교향악단이나 각종 페스티발 지원 등이 눈길을 끈다.

스웨덴은 직접 지원은 없지만 주민 6천명중 1천명이 취업을 하는 고용효과와 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시설 확충으로 혜택을 보고 있다.

처분장이 위치한 웨스타함 마을의 쿠트안게우스 부군수는 “처분장 운영회사가 내는 사업세와 높은 취업률로 현재 인구가 유입될 정도로 주변 주민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슐랭듀이,스웨덴 웨스타함=고종관 기자)

<국내 방사성폐기물 부지확보 추진 일지>

▶1986년 부지선정 사업 착수
▶88 영덕.울진.영일 등 후보지 조사
▶89 지역주민 반대로 중단
▶90.9 안면도 후보지 선정
▶90.11 안면도 사태
▶91.6 안면도 선정안 공식 철회
▶91.10 후보지 공모. 울진 등 6곳 적격지 발표
▶92.3 주민 집단 시위로 무기연기
▶94.1 양산지역 타당성 조사
▶94.6 지역주민 격렬 시위로 중단 선언
▶95.2 굴업도 폐기물관리시설지구 지정 고시
▶95.12 지질조사 결과 활성단층 확인, 백지화
▶98.9 국가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확정
▶2000.7~2001.2 지자체 대상 공개유치
▶2008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시설 완공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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