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 쇠구슬 묻지마 난사 2시간 … 경찰 100명이 놓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서울 도산대로의 한 자동차전시장 전면 유리가 11일 오후 5시20분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쇠구슬 공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났다. 경찰은 “인명을 해칠 수 있는 정도의 파괴력”이라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무차별적으로 쇠구슬을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5시쯤부터 약 두 시간 동안 서울 논현동·청담동·신사동 등 강남 일대 대로변의 상가 13곳과 차량 세 대가 쇠구슬 공격을 당했다. 상가와 차량의 유리창이 크게 부서졌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공격을 한 범인은 차량을 타고 도산대로·강남대로 등의 인도 측 차로를 달리며 전면이 유리로 된 건물을 향해 지름 5㎜짜리 쇠구슬을 발사했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쇠구슬이었다. 다만 쇠구슬을 발사한 것이 총기인지 새총 등의 재래식 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공격으로 차로에서 4~5m 떨어진 피해 매장들의 유리창은 모두 부서졌다. 이날 오후 5시20분쯤 쇠구슬 공격을 받은 청담동 대로변 수입도자기매장 주인 서모(50·여)씨는 “가게 안에 있다 ‘퍽’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잠시 후 ‘와장창’ 하며 유리창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고 말했다. 이 매장의 전면 가로 3m, 세로 4m짜리 유리창은 두께 10㎜의 강화유리였지만 쇠구슬의 파괴력을 이기지 못했다. 도산대로변 자동차 대리점과 패스트푸드 매장 등의 일부 유리창은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 정도를 볼 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맞을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파괴력”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5시34분 “유리창이 부서졌다”는 신고를 받았고, 경찰서·파출소 직원 등 100여 명이 순차적으로 출동해 쇠구슬을 발견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 범인은 범행 초기 도산대로를 달리며 청담동과 논현동 지역 매장에 쇠구슬을 발사했고 이후 북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신사동·압구정동에서 추가로 쇠구슬을 쏜 뒤 강을 건너 달아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전형적인 ‘분노 범죄’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이제까지 일어났던 쇠구슬 난사 사건 대부분이 시위나 보복의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의 폐쇄회로TV(CCTV) 화면을 분석해 용의 차량을 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운행 중 쇠구슬을 쏜 점으로 미뤄볼 때 범행에 가담한 사람이 두 명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차량은 운전석이 좌측에 있어 운전을 하면서 매장을 조준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차량이 오토바이일 가능성도 열어두고 용의 차량을 3~4대로 좁혀 수사 중이다.

 한편 지난 10일 오후 1시쯤 인천 만수동·구월동 일대에서도 상가 8곳이 쇠구슬 공격을 받았다. 경찰은 차량에 탄 채 쇠구슬을 난사한 점으로 볼 때 동일범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지역 경찰서는 용의자 검거를 위해 합동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분노 범죄=치밀하게 계획하기보다 충동적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