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201> 재편되는 북한 권력지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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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이원진 기자

11일 총선이 낀 이번 주는 남한만큼이나 북한 정치판에서도 ‘핫 이벤트 주간’이었다. 이미 군(軍) 최고사령관 자리에 오른 김정은이 명실상부 당(黨)·정(政) 최고 지위까지 거머쥐며 형식상으로 3대 세습을 완료한 셈이다.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를 열어 당 최고직인 제1비서에 추대됐고, 13일엔 우리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제12기 5차 회의에서 국방위원장에 오를 전망이다.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잇따라 개최하는 건 이례적으로 김정은과 파워 엘리트의 배치를 법적·제도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절차다. 과거와 현재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의 인사를 통해 평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북한 권력 지형을 파악해본다.

김정은

●당대표자회= 지난 3월 8일 ‘부녀자의 날’ 행사장. 82세의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은 가족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28세 김정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공개됐다. 매년 있어왔던 행사지만 김정일 사망 이후 처음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평양은 ‘죽느냐 사느냐’의 권력 암투장임을 실감케 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는 2009년 2월 현직에 오른 후 2010년 3차 당 대표자회에서 당 중앙군사위원이나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 어디에도 끼지 못하며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됐지만 결국 4차 당대표자 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올랐다.

 뜨는 별과 지는 별, 신구 세력의 명운이 교차하게 되는 게 바로 당대표자회다. 당대표자회는 당 중앙위원회가 노동당의 최고지도기관인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필요에 따라 소집하는 회의로, 당 규약은 이를 통해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 전술의 긴급한 문제들을 토의하고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66년(2차)를 마지막으로 44년 만에 부활한 2010년 9월 28일 3차 당대표자회는 베일에 가려 있던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당·군 권력의 2인자로 급부상했고, 김정은을 떠받치고 갈 신세력이 대거 등장한 권력 재편의 장이었다. 당시 북한은 이례적으로 회의가 끝난 즉시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 30명의 약력을 무더기로 밝혔다.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당 전문부서 부장의 담당 업무까지 공개했다.

 김정일은 이 당대표자회에서 유명무실했던 노동당 조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을 충원하고 그동안 사실상 기능이 정지됐던 당 중앙군사위를 되살렸다. 김정은 후계체제를 노동당이 뒷받침할 수 있도록 조직체계를 구축한 셈이다. 국방위가 북한 최고의 권력기구이기는 하지만 정책결정 기구에 가까운 데 비해 노동당은 전국적 조직을 갖춘 실행조직이란 점에서 압축적 승계과정을 거치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노동당의 조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꿰뚫어본 것이다. 4차 당대표자회에선 당의 기능이 군부 중심으로 확연해졌다. 4차 인사의 핵심은 공석이던 당 공안담당 기관장의 임명과 공안담당자들의 정치국 내에서의 승진이다.

 2010년 3차 당대표자회 때 급부상한 실세가 이영호 군 총참모장이라면 2012년 4차 당대표자회의 실세는 단연 최용해 총정치국장이다. 2010년 사망한 조명록의 자리를 그대로 계승해 4월 군부 내 최고 직책인 총정치국장을 거머쥔 그는 최근 북한군 계급장으로는 원수 다음으로 높은 차수로 승진함은 물론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이영호를 제치고 북한의 넘버3로 떠올랐다. 장성택의 측근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장성택의 인민군 후방총국장으로 최근 임명된 현철해와 국가안전보위부장으로 기용된 김원홍은 당 정치국 위원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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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김정일 체제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3차 회의에서 정치국 위원과 중앙군사위원에 이름을 올리는 데 그쳤고 4차에서는 김정각에게 인민무력부장 자리를 내주며 정치국 부장으로 물러났다. 김영춘이 김정일 시대의 군부 오른팔이라면 김정은 시대엔 최용해와 이영호가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장성택 등 로열 패밀리 세력과 김정각 등 군부 강경 세력 중 어떤 세력이 전면에 배치되는가에 따라 김정은 체제의 향후 권력구조 및 정책을 예상해볼 수 있다.

 한편 4차 회의에선 당 규약을 개정해 김정일을 김일성과 함께 ‘영원한 지도자’로, 김정은은 대를 잇는 지도자로 규정하고 공석인 모든 직책을 승계했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북한 권력의 정점인 당비서국의 총비서를 영원직으로 남겨두고 본인은 제1비서가 됐다.

●최고인민회의=북한의 최고 주권기관이자 입법기관으로 1948년 8월 북한인민총선거에 의해 창설됐다. 북한은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라는 이름 아래 인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대내외에 선전하기 위해 선거를 실시한다. 북한 헌법 제87조에선 최고인민회의를 ‘헌법을 수정·보충하고 법을 제정하는 최고의 주권기관’으로 규정한다. 헌법상 국가 최고수반인 국방위원장 선출 및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내각 총리를 선출하고 예·결산을 심의·의결한다.

 98년 9월 10기 회의 출범 이후 정기회의는 1년에 한 차례만 열리고 있다. 남한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임기는 5년이다. 대의원 수는 남한 국회의원(300명)의 2배가 넘는 687명이고 행정구역과 인구 수를 동시에 감안해 결정된다. 노동당이 공천하는 후보자 비율은 인민군 장성이 40%, 중앙 간부 30%, 지방 일꾼 20%이며 형식상 노동자·농민도 포함된다.

 13일 열리는 최고인민회의의 최고 관전 포인트는 김정은이 국방위원장 직에 오를지다. 김정일이 ‘주석’직을 남기고, 김정은이 ‘당총비서’직을 영원직으로 남긴 것처럼 국방위원장직을 상징적으로 유지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최고 책임자였던 국방위원회는 단순한 국방 관련 기관이 아니라 ‘국가주권의 최고 국방지도기관’(북한 헌법 제106조)이다. 또 국방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헌법 제100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김정은은 김정일을 고려해 국방위원장직을 상징적인 자리로 비워두거나 국방위원회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소설 김정일 』을 쓴 탈북작가 임일씨에 따르면 북한 주민도 최고인민회의 의원을 뽑는 선거를 한다. 선거장 주변엔 인공기와 오색기가 펄럭이고 스피커에서 혁명가요가 흘러나온다. 투표소 입구에 들어서면 안전원(경찰)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선거관리원이 투표 요령을 알려주며 ‘선거표’(투표용지)를 준다. 빳빳한 초록색 용지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표’라는 빨간색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뒷면은 백지다. 선거벽보판에 붙은 후보자는 단 한 명, 물론 공약도 없다. 그래서 북한의 대의원 선거는 유권자 100% 참가, 100% 투표, 100%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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