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매출 500만원 김밥, 탈수기에…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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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랜드’ 유영숙 대표의 김밥엔 ‘속’이 많이 들어간다. 특히 우엉조림을 많이 넣는 게 유 대표 김밥의 특징이다. 밥은 김의 까만색이 보일까 말까 할 정도로만 얇게 깐다.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달리 극성스러웠던 올 꽃샘추위도 이젠 끝물이다. 봄소풍과 꽃놀이 등 야외활동 계획이 줄을 잇는다. 도시락 먹는 맛은 봄나들이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도시락 메뉴의 주인공은 단연 김밥. 김밥 하나만 맛있어도 나들이 먹거리 걱정은 없다. 맛있게 김밥 싸는 비법을 찾아 김밥전문점 ‘후랜드’의 유영숙(68) 대표를 만났다. 1987년부터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에서 김밥집을 운영해온 유 대표는 김밥과 유부찰밥, 단 두 개의 메뉴로 하루 매출 최고 500만원을 기록했을 만큼 인기 있는 ‘김밥 할머니’다. 최근 ‘압구정프렌즈’란 이름으로 프랜차이즈 사업도 시작한 그에게서 25년을 이어온 김밥 요리 노하우를 들었다.

김밥 속 재료, 물기 완전히 제거하는 게 중요

유 대표가 만드는 김밥은 딱 한 가지 종류다. 재료는 평범하다. 쇠고기·우엉·계란·당근·단무지·오이가 전부다. 햄이나 맛살·어묵 등 가공식품은 사용하지 않는다. 유 대표는 자신이 만든 김밥을 ‘조선김밥’이라고 부른다. 가장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김밥이란 뜻에서다. 시금치 대신 오이를 쓰는 게 유일한 특이점이다.

 “처음엔 시금치를 썼지요. 데친 다음 탈수기로 꼭 짜서 소금·참기름 양념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짜도 자꾸 물이 나오는 거예요. 재료에서 물이 나오면 김밥이 쉬 상하거든요. 재료 근처 밥알이 그 물기에 불어 맛도 없어지고…. 그래서 탈수기를 8분씩 일곱 번이나 돌려 물기를 빼봤는데, 시금치가 실오라기처럼 되면서 너무 질겨져 안 되겠더라고요.”

 

2 쇠고기 볶음. 3 채 썰어 소금간을 한 뒤 탈수기에 돌려 물기를 제거한 당근. 4 우엉 조림. 5 계란 부침. 6 다 싼 김밥의 ‘얼굴’. 여느 김밥에 비해 밥 양이 훨씬 적다. 7 오이는 아무 가공도 하지 않고 그냥 사용한다. 8 김밥용 김은 구멍이 없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9 소금·참기름으로 양념을 한 밥. 밥알이 뭉그러지지 않도록 양념을 할 때도 조심스럽게 다룬다. 10 식초 물에 세 시간 담가 새로 맛을 낸 단무지.

 오이도 처음엔 소금에 절여 썼다고 한다. 그랬더니 날오이 냄새가 더 강해져서 김밥 맛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이젠 오이를 그냥 쓴다. 물기가 많은 오이 속 부분은 버린다. 오이를 세로로 4등분해 가운데 속은 잘라 버리고, 남은 부분을 각각 2~3등분해 사용한다.

 이렇게 재료마다, 조리 과정마다 유 대표만의 원칙과 이유가 있다. 평범한 재료로 특별한 맛을 내는 비법이다.

 유 대표는 단무지도 새로 맛을 들여 사용한다.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사온 통단무지를 김밥 크기에 맞도록 자른 뒤 식촛물에 3시간 동안 담가두는 것이다. ‘짠맛밖에 없는 단무지가 새콤달콤해지는 과정’이다. 식촛물은 물 1.8L에 식초 100mL, 설탕 3티스푼, 소금 3티스푼을 넣어 만든다.

김밥전문점 ‘후랜드’ 유영숙 대표.

 밥 짓는 데도 원칙이 있다. 먼저 깨끗이 씻은 쌀을 30분간 물에 담가둔다. 유 대표는 “30분 불린 쌀로 밥을 지어야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또 “밥은 약간 되게 하고, 소금과 참기름으로 밥에 양념을 할 때는 손에 힘을 주지 말고 애기 다루듯 살살살 만져야 밥이 떡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념한 밥을 넓은 그릇에 퍼 놓고 5~10분 정도 바람을 쐬어 뜨거운 기운을 가시게 한 뒤 김밥을 싸는 것도 유 대표의 비법이다.

 김밥 속재료의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유 대표가 사용하는 도구는 탈수기. 채 썰어 소금에 절인 당근과 식촛물에 담갔다 꺼낸 단무지는 탈수기에 넣고 각각 16분, 8분씩 돌린 뒤 사용한다.

핏물 뺀 쇠고기 양념해 냉장고에 반나절 보관

유 대표는 “김밥이 쉬워 보여도 참 까다로운 음식”이라고 말했다. 재료 준비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말뜻이 분명해진다. 도저히 하루 만에 뚝딱 만들 수 없는 ‘슬로 푸드’다.

 고기는 쇠고기 안심과 다릿살 섞은 것을 갈아 사용한다. 갈아놓은 고기는 양념을 하기 하루 전 냉동실에서 꺼내 냉장고로 옮겨둔다. 고기가 녹으며 핏물이 빠지는데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핏물 뺀 고기에 양념을 한 뒤에도 반나절 이상 냉장고에 넣어둔다. 양념이 속속들이 배어들 시간을 주는 것이다. 고기 양념은 설탕·간장·마늘·후추로 한다. 이때 설탕과 간장의 비율을 1대 1로 맞춘다.

 우엉을 조리는 과정도 간단치 않다. 채 썬 우엉이 푹 잠길 만큼 식용유를 붓고 여기에 설탕과 간장을 1대 1로 섞은 소스를 넣어 3시간 정도 조린다. 중간중간 우엉을 뒤적여줘야 하니, 3시간을 꼬박 불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계란을 두툼하게 부쳐 넣는 것도 유 대표 김밥의 특징이다. 도저히 ‘지단’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두께다. 계란 7개를 풀어 소금간을 하고 사각 프라이팬에 부어 지진다. 약한 불로 6~7분 정도 익혀야 완성된다. 그렇게 만든 계란부침을 열두 줄로 자른다. 계란 7개로 12줄의 김밥을 싸는 셈이니, 김밥 속 계란 양이 상당하다.

 유 대표가 가장 신경을 쓰는 과정은 재료 구입이다. 매번 서울 가락시장과 경동시장에 직접 나가 골라 산다. 20년 넘게 거래한 단골가게에도 전화로 주문하고 배달해 달란 적이 없다. “공산품이 아니니 매일 상태가 다르죠.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야 안심이 돼요.”

 김은 구멍이 없고 윤기가 나는 까만 김으로 고른다. 씁쓸한 맛이 없고 달짝지근한 맛이 도는 김이 좋은 김이다. 오이는 상주오이로 사는데, 껍질이 얇고 오돌토돌한 돌기 속 점이 검은 색인 ‘흑침’이 좋다. 당근은 반드시 흙당근으로 사고, 참기름은 경동시장 단골 방앗간에서 직접 짜다 쓴다. 또 우엉은 꼭 손으로 썬 것을 구입한다. 기계로 썬 우엉이 ㎏당 1000원 정도 싸지만 조리는 과정에서 잘 부서지기 때문이다.

 원재료의 신선도를 확인할 수 없는 반가공 상태의 재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고기 양념에 들어가는 마늘은 통마늘로 사서 갈아쓰고, 계란도 액체 상태의 ‘액란’은 사용하지 않는다. ‘영양란’으로 사서 깼을 때 노른자가 흐트러지지 않는지 확인하고 쓴다.

 유 대표는 “신선한 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하면 김밥은 맛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복잡한 과정 속 원리는 단순했다.

유부 얼려 뜨거운 물에 데치면 맛 더 좋아져

11 유부찰밥 만드는 모습.

유부초밥은 김밥과 함께 나들이 도시락의 단골메뉴다. 유 대표 역시 92년부터 ‘후랜드’ 메뉴에 유부초밥을 추가했다. 초밥 속 밥이 찰밥이라 해 이름을 ‘유부찰밥’이라고 붙였다. 유 대표는 “찰밥으로 만든 유부초밥은 식어도 차진 상태가 그대로 유지돼 훨씬 맛있다”고 말했다.

 밥은 찹쌀과 멥쌀을 1대2로 섞어 짓는다. 다 된 밥에 식초·설탕·소금을 6대3대1로 섞어 만든 소스로 양념한다. 이때 검은깨와 다진 우엉조림, 다진 유부조림을 함께 넣는다. 유 대표는 “초밥 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다진 고기와 다진 새우, 다진 당근 등 다른 재료들도 여럿 넣어봤는데 썩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밥을 쌀 유부 옷을 만드는 과정은 평범한 듯 독창적이다. 조미하지 않은 사각 유부를 대각선 방향으로 자른 뒤 냉동실에 넣어 얼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단계에서 얼려야 더 맛이 난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유부가 다 얼었으면 이를 꺼내 팔팔 끓는 물에 넣어 데친다. 기름을 빼는 과정이다. 건져낸 유부를 살짝 짠 뒤 간장과 설탕을 1대1로 섞은 소스를 넣어 20~30분간 조려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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